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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May 27.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1]

맘스터치와 월드콘

2023.05.27


이번엔 된다. 이번엔 꼭 찾아온다. 우리 아이가.


작년 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와 아내에게 찾아와 준 아이 '꼬미'가 우리 부부에게 우렁천 심장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을 땐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꼬미가 아내 뱃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평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잘하지 않고 SNS도 하지 않던 내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먼저 새해 인사 메시지를 보내고 SNS에 초음파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비록 아내와 떨어져 중국에 나와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 또 코로나로 인한 한중 양국의 입국자 격리 정책 때문에 자주 한국을 들어가지 못하면서 지치고 힘들어하던 나였지만, 꼬미가 찾아오고 나서는 한국에 들어가 아내를 마사지해주고, 아내 배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듣고, 매일 밤 잠들기 전 꼬미에게 태담을 들려줄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밝고 힘찬 긍정에너지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아내와 난 좌절했다. 꼬미가 아내 뱃속에서 짧은 9주 간의 생을 마감하고 하늘로 떠나간 것이다. 아내는 홀로 소파술과 자궁경 시술을 받았고, 이번에도 옆에 있어주지 못한 난 아내를 향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여러 번 눈물을 쏟았다.


누구보다 쉽지 않았을 아내다. 자꾸 나이를 먹어간다며 조급해했고, 친구들의 이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티도 내지 못하고 혼자 마음 아파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손을 잡아줄 수도, 안아줄 수도 없는 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내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매일 저녁 잠들기 전 확언을 되뇌며 아내와 내가 우리 아이의 손을 한쪽씩 잡고 행복하게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 장면이 이미 이뤄졌다고 믿었다.


어느덧 꼬미를 그렇게 힘들게 보낸 지 4개월 정도가 지났다. 아내는 다행스럽게도 천천히 그리고 건강하게 회복했고, 이번엔 꼭 잘 될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품고 우린 다시 한번 힘을 내고 있다. 아내는 운동, 식단, 영양제 등을 잘 챙기며 꿋꿋하게 버텨주었고, 장기 과배란을 끝낸 바로 어제 난자 채취를 했다. 난자 개수는 이전보다 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난자 상태가 좋은 것 같아 맘이 놓인다. 그리고 이번엔 신선 이식을 시도할 수 있다고 해서 더욱 기뻤다.


어제 병원에서 난자 채취를 끝내고 수면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가 오늘은 꼭 맘스터치 햄버거를 먹겠다고 했다. 그동안 먹고 싶은 것을 많이 참았다고. 햄버거 따위가 문제랴. 먹고 싶은 것 맘껏 먹고 그동안의 힘듦을 다 날려버리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싸이버거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아내의 메시지에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오늘은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더니 냉동실에서 꺼낸 월드콘 사진을 보내며 과배란 할 때 여동생과 마트에 갔다가 먹고 싶어서 사둔 건데 여태 먹지 못하고 참아왔다며 '먹어도 될까, 오빠?' 하고 내게 물었다. 어제 맘스터치 이야기엔 그저 코끝이 찡한 정도로만 끝났었는데, 월드콘 이야기에 결국 눈물이 흐르고야 말았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과배란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싶은 것을 참았을 아내 모습이 이미 젖어있는 내 눈가에 아른거렸다. 



아내는 말한다.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다고. 배아 3개를 넣을 수 있는 나이가 돼서 동결은 생각하지 않고 3개를 다 넣어달라고 했단다. 주말이 지나면 곧 이식이다. 누구보다 맘고생이 심했을 아내가 씩씩하게 견뎌준 만큼,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참아가며 힘들게 관리해 온 만큼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년 이맘때쯤엔 이미 태어난 아이와 함께 셋이 한 공간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아내가 더 이상 맘고생을 하지 않을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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