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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돌아왔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의 한 달

by 박이운

난임이 끝이난 건 작년(2024년) 5월이었다. 우리 부부가 간절히 바랐던 천사 같은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이제 아내가 아이와 함께 돌아올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기 시작했지만, 현실에 놓여있는 여러 상황과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는 계속 한국 친정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되던 즈음 대학병원에서 출생 후 발견된 아이의 몇몇 증상들이 호전되어 3~6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만 하면 될 것 같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아내와 난 본격적으로 중국 방문 시기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중국에서 무비자 정책을 시행해 한 달 동안 무비자로 방문을 할 수 있게 됐고, 작년 연말부터 여러 준비 과정을 거쳐 드디어 지난 2월 3일 아내와 아이가 중국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가 오기 전 이곳에서 지낼 만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3년 동안 집에 쌓인, 굳이 갖고 있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고 대청소를 했으며, 아이가 지내는데 필요한 매트, 울타리, 침대 펜스, 보행기, 하이 체어 등도 구매해서 조립하고 설치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준비는 마음의 준비였다. 혼자 지내면서 완전하게 틀이 잡혀버린 내 루틴과 패턴이 180도 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녁 9시에 명상 음악을 들으며 명상과 함께 취침, 새벽 4시 기상, 스트레칭과 요가 동작을 곁들인 간단한 홈트,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하는 영어 공부와 독서, 유튜브용 스크립트 작성 및 영상 제작 등 내가 회사 생활 외적으로 집에서 하는 주요 활동들이 새벽 기간에 몰려있는데, 난 순진하게도 나의 이 루틴이 깨지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가 중국으로 온 후에도 며칠 동안은 9시면 잠자리에 들기 위해, 또 4시에 일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내 모든 루틴이 깨지고 말았고, 생활 리듬을 잃은 난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내 서툰 육아실력과 더해져 아내와의 잦은 투닥거림으로 번졌다. 행복해야만 했던 한 달 중 첫 2주는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3년 만에 겪는 아내와의 생활,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겪는 아이와의 생활이 낯설고 힘들고 불편하기만 했던 내가 2주 후 완벽하게 달라져있었다. 일단 내가 고수하고자 목표했던 루틴을 과감히 포기했다. 내가 회사에 출근해 일하는 동안 하루종일 육아에 시달린 아내가 아이를 재운 후에야 갖는 소중한 자유시간을 내가 일찍 자야 한다는 이유로 아내 혼자 보내게 했었는데, 점차 아이가 잠든 후 둘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고,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같이 봤으며, 와인과 간식도 함께 나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자 자연스럽게 기상 시간도 늦어져 5시에서 6시경에 일어나게 됐는데, 빨래와 아이 분유 먹이기가 내 아침 주요 업무인 데다 출근준비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빠듯하긴 했지만 적응하고 나니 한층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이었다. 집에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것이 처음엔 많이 어색했지만, 어느덧 퇴근 후 집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날 발견하게 됐고, 숨을 헐떡이며 집에 도착하면 혼자 살 땐 느낄 수 없었던 아내의 따스한 온기와 집밥 냄새가 날 휘감았다. 퇴근한 아빠를 보고 '아빠빠빠'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는 순간엔 업무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상일 테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아내와의 투닥거림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그 투닥거림과 화해의 과정마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또 혼자서는 절대 나가지 않고 회사와 집 밖에 모르던 내 생활에 아내와 아이가 들어오니 산책과 외식 등 집 밖으로 나가게 되는 일들이 생겨났고, 집 주변에 이렇게 맛있는 식당, 좋은 카페, 예쁜 호수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3년 만에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나 행복한 감정을 넘치도록 선물해 준 한 달이라는 가족과의 소중한 기간은 야속하게도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라고도 했다. 아내와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니 몰려오는 후회가 내 마음의 댐을 천천히 무너뜨렸고, 이내 눈물의 샘이 흘러넘쳤다. 투닥거리지 말고 좀 더 잘해줄걸, 루틴 지키겠다고 일찍 잠들지 말고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낼 걸, 좀 더 많이 대화할 걸, 좀 더 많이 안아줄 걸, 좀 더 많이... 좀 더...


하지만 후회만 남은 것은 아니다. 한 달 동안 배운 것이 더 많다. 3년 간 혼자에 익숙해져 버린 내가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고, 집에 날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은 일을 할 때나 출퇴근을 할 때 힘을 내어 달리게 해 주었으며,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또 아내와 아이가 있을 때 내 담당이었던 빨래, 설거지 등의 집안일도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그 일을 하는 내 마음은 달랐다.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인지 아니면 내 필요에 의해서 하는 일인지의 차이가 정말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내와 아이가 다시 중국을 방문하기까지 7개월가량이 남았다. 과연 이 긴 시간을 다시 홀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내와 아이가 돌아간 후 이틀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난 그리움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의 시간을 되새기다 보니 내 안에 어떤 힘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내 가족, 아내와 아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떤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아내와 아이가 나와 함께하는 동안 내게 일깨워 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년이 철저히 혼자라 여기며 굳은 마음을 먹고 버티면서 살아온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도 여전히 혼자인 것은 맞지만 내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전과 다른 따뜻함의 힘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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