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아이의 조각도 함께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 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에 나오는 가사 일부다. 아내와 아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흘러나온 이 가사에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야 말았다. 단언컨대 올 2월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한 달이었고, 오늘의 이 시린 마음은 두 번째로 겪는 생이별의 아픔이었다.
2022년 2월, 중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아내와 난 난임을 이유로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당시 구정 연휴를 맞아 아내를 한국에 데려다주고 홀로 중국으로 돌아온 난 2주의 격리 시설 격리 끝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안에 가득한 아내의 조각들로 인해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당시의 심경을 글로 남겼었는데, 이 글을 쓰기 직전 읽으니 오늘의 슬픔과 겹쳐져 마음이 더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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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한 번의 유산을 포함한 기나긴 난임의 터널을 지나 천사 같은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다. 너무도 행복했지만 아내와 아이가 중국으로 올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기러기 생활이 이어졌기에 반쪽짜리 행복이었다. 물론 출산휴가, 여름휴가, 중국 연휴 등을 이용해 최대한 많이 한국으로 들어가 아내와 아이 곁에 머물렀지만, 내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아이가 아빠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작년 11월, 대학병원 검사 결과 출생 당시 나타났던 질환들이 많이 호전되어 3~6개월에 한 번씩만 추적 검사를 하면 될 것 같다고 하셨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2월 한 달을 중국에서 나와 머물기로 결정을 내렸다. (작년 연말부터 이어진 중국의 한 달 무비자 방문 정책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말 어렵게 성사된 세 가족의 상봉인데 기대와 달리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나름 아내와 아이를 맞이한다고 3년간의 집 안 묵은 때를 열심히 벗기고 벗겨냈지만 부족한 점 투성이었고, 또 3년간 혼자 지내면서 나만의 개인적인 생활 패턴과 루틴이 잡혔던 터라 오랜만에 하는 단체(?) 생활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내 서툰 육아는 아내의 잔소리와 아기의 울음을 불러오기 일쑤였고, 자그마치 2주라는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투닥거림이 날로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잔소리에 내 속에 있던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와 버렸다.
"잔소리 좀 그만해 제발."
뭘 해도 실수가 많아 '똥손'이라는 아내가 붙여준 별명이 딱 들어맞는 나였기에 아내도 하기 싫은 잔소리를 해야 했고, 그 말들을 들으며 토라진 내가 입을 삐쭉 내밀며 볼멘소리를 하면 결국 투닥거림이 시작되는 패턴이었는데 결국 그날 터져버린 것이다.
이후 우리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밤을 보냈고, 다음 날 아침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삐쭉 내밀고 아이의 아침 분유를 태워 먹이던 내게 아내가 물었다.
"오빠, 나랑 결혼한 거 후회 안 해?"
"무슨 소리야. 내가 태어나서 여태껏 제일 잘한 일이 여보랑 결혼한 건데."
정말 그랬다. 토라진 건 토라진 거고, 잘한 일은 잘한 일이다. 아내는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리고, 체구도 한참 작지만 언제나 내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이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일어날 힘을 주는 사람이며, 내 모든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주는 사람이다. 요약하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라는 말이며, 다른 말로 하면 내 삶의 이유,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엔 아내를 만난 것이 내 생애 가장 잘한 일이었고, 결혼 후엔 아내와 결혼한 것이 그랬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닮은 아이가 태어난 지금은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더라도 절대 안 돌아가겠다고 다짐한 나다.
이른바 '잔소리 사건' 이후 아내와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간 오늘까지 약 2주가량은 앞선 2주와 달리 매우 순조로웠다. 분명한 역할 분담이 생겼고, 아이도 환경에 적응해서인지 엄마의 리드대로 패턴을 잘 따라주었으며, 나도 나름 손에 익은 육아 보조 역할로 아내에게 있는 힘껏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세 가족의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결국 이별해야 하는 오늘이 오고야 말았다.
아내와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바로 어젯밤, 어렵게 재운 아이가 깰까 봐 거실에 나와서도 목소리를 낮춰 아내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아이의 미래, 우리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 아직은 막막하고 갈 길이 먼 우리지만, 아내와 얘기를 나누며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난 당신이 옆에 있다면 해낼 수 있어.'
열 두시 가까이 이어진 대화가 내게 또다시 기러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됐다는 점은 분명했다. 반면 한 가지 깊은 후회도 남겼다. 피곤함을 핑계로, 출근을 핑계로 먼저 잠들지 말걸 하는, 좀 더 자주 그리고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눌걸 하는 후회말이다. 이렇게 또 한 번 '껄무새'가 되고 나서야 깨닫는 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엔 여전히 한참 먼 것만 같다.
오늘은 아내와 아이가 자던 침실 침대도, 거실에 따로 깔아놓은 내 잠자리도 아닌 아내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던 소파에서 아내의 온기를 느끼다 잠에 들려한다.
그립다 여보. 벌써.
Post Script :
샤워부스 안에 붙여놓은 내 아이디어 보드에 아내가 남긴 메모다. 한 달 만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온 내가 휑함과 가슴 시림에 뭘 해야 할지 몰라 이 방 저 방을 서성이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아내가 남긴 이 메모를 발견하곤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남편 울리는 재주는 타고났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