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의 조각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by 박이운


아내를 한국에 두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거의 두 달치 월급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난임 때문이다. 한국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왔고, 아내는 시술을 위해 한국에 남았다. 3주라는 중국 호텔 격리는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였다. 호텔에 있는 3주 동안은 어서 호텔 격리가 끝나고 집으로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자가격리 7일이 더 남았지만, 집이니까 그 정도는 더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호텔 격리가 끝나고 집으로 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집이 나에게 선사해준 공기부터 너무 좋았다. 우리 집 공기, 우리 집 냄새, 우리 집, 아내와 나의 보금자리, 아내와 나, 아내...... 우리 집 공기에 한 3초 심취했을까 싶은 찰나, 난데없는 휑함이 나를 덮쳤다. 그렇다. 아내가 없다.


힘겹게 무거운 캐리어들을 대리석 바닥에 올려놓고서 신발끈을 풀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아내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발장에 놓인 작은 운동화, 어그 실내 슬리퍼. 아내의 작고 귀여운 발이 떠오른다. 조금씩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집에 들어서니 식탁 겸 아내가 공부와 취미생활용으로 사용하던 이케아 접이식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내가 쓰는 하얀 보온병.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아내지만, 매일 내가 출근하면서 물을 가득 채워주고 테이블에 두고 가면 그나마 잘 마셨는데......


보온병 안에 물이 조금 차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싱크대에 물을 버리러 주방 문을 열고 주방에 들어섰다. 무심히 보온병 뚜껑을 열어 물을 버리고 설거지는 이따가 해야지 하며 몸을 돌리려는데, 가득 차있는 양념통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혼자 저 양념통을 비울 날이 오긴 올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매일 퇴근을 하면 코를 자극하던 아내의 맛있는 저녁 요리 냄새와 요리하던 아내의 뒷모습이 겹쳤다. 아내가 맛있게 차려준 저녁을 먹고 나서 내가 설거지를 할 때면, 아내는 식탁의자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내의 연주와 노랫소리를 들으며 설거지를 흥겹게 마친 뒤 나도 마주 앉아 아내 연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노라면 그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던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아내 의자로 시선이 옮겨갔다. 우리 집 인테리어와는 전혀 맞지 않는, 총각 때 이케아에서 산 검정 컴퓨터 의자. 아내는 이 의자에 앉아 중국어 수업도 듣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 온라인 강의도 듣고, 다양한 취미 활동도 했었다. 의자에 걸쳐져 있는 아내의 카디건, 담요, 의자에 놓인 쿠션과 방석. 언제나 이 자리에 앉아 날 보며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아내가 보고 싶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집에만 있어 우울하다며 사달라고 조르고, 몇 날 며칠을 집중해서 완성한 여기저기 놓여있는 레고들, 그리기 취미를 갖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오일파스텔로 그린 거실 한편에 붙여둔 작품들, 중국 미용실이 싫다고 가지 않아 항상 지저분한 내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어주던 이발기, 침실엔 아내가 항상 껴안고 자던 무민 인형까지, 너무 많은 아내의 조각들이 쉴 새 없이 내 맘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천장을 바라보며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그렇게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휴. 이제 좀 가라앉혔으니 짐 정리를 해볼까. 소파에서 일어나 캐리어 쪽으로 움직이는데 아직 1월 페이지에 멈춰있는 달력이 눈에 밟혔다. 1월에 집을 떠났는데 3월에나 돌아왔네 생각하며 달력을 집어 3월 페이지로 넘기는 순간, 결국 참았던 눈물샘이 폭발하고 말았다. 아내는 내가 이렇게 혼자 돌아와 아내가 없음에 눈물을 흘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3월 페이지 오늘 날짜 칸에 내게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을 보니......


WeChat_Image_20220309142132.jpg?type=w1


너무 보고 싶은 아내, 아내는 그 힘든 시험관 시술도 혼자 할 수 있다며 씩씩하게 공항에서 나를 배웅했다. 그날도 바보같이 운 건 나였고. 그리고 오늘도 그랬다. 내가 찍어 보낸 달력 사진에 바로 영상통화를 걸어와 울고 있을 줄 알았지 하며 세상 제일 아름다운 미소를 내게 보여준 아내, 세상 제일 못생긴 얼굴로 울고 있는 나.


아마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지내다 보면 하나둘씩 계속 튀어나오겠지. 아내와 함께한 시간만큼 아내의 흔적도, 조각도 많을 테니까.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와 입국 격리가 하루빨리 사라져서 아내와 장거리 연애를 할 때처럼 1박 2일로라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자주 보고 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다.


P.S : 이별노래지만 이별했다는 것만 빼면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 에피톤 프로젝트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가사를 남겨봅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려,

수줍게 넌 내게 고백했지


“내리는 벚꽃 지나 겨울이 올 때까지

언제나 너와 같이 있고 싶어 “


아마, 비 오던 여름날 밤이었을 거야,

추워 입술이 파랗게 질린 나, 그리고 그대


내 손을 잡으며 입술을 맞추고

떨리던 나를 꼭 안아주던 그대


이제와 솔직히 입맞춤보다 더

떨리던 나를 안아주던 그대의 품이 더 좋았어


내가 어떻게 해야 그대를 잊을 수 있을까


우리 헤어지게 된 날부터

내가 여기 살았었고, 그대가 내게 살았었던 날들


나 솔직히 무섭다

그대 없는 생활 어떻게 버틸지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생각할수록 자꾸만 미안했던 일이 떠올라


나 솔직히 무섭다

어제처럼 그대 있을 것만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 그대 닮은 뒷모습에

가슴 주저앉는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하니


그댄 다 잊었겠지

내 귓가를 속삭이면서 사랑한다던 고백


그댄 알고 있을까?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얼마를 그리워해야 그댈 잊을 수 있을지


난 그대가 아프다

언제나 말없이 환히 웃던 모습


못난 내 성격에 너무도 착했던 그대를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생각해


난 그대가 아프다

여리고 순해서 눈물도 많았었지


이렇게 힘든데, 이별을 말한 내가 이 정돈데

그대는 지금 얼마나 아플지...


나 그대가 아프다

나 그 사람이 미안해

나... 나 그 사람이 아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월을 느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