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네. 너의 이별 이야기에 담긴 네 상실감과 아픔들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와닿는 것 같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도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야. 나 또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서 매일 울다 지쳐 잠들던 그런 시기가 있었어. 불빛 하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과도 같았어.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이룰 수도 없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가라앉기만 했어. 하지만 난 그 터널이 계속되길 바랐어. 출구의 빛이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 그 사람만이 내게 빛을 주고, 이 어두운 긴 터널의 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계속 그 추억 속에 갇혀 있었고, 끝나지 않기를 빌었어. 아무리 슬퍼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도. 그 추억들에 감사하고, 또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면서 말이야.
그 일을 겪은 지 벌써 10년쯤 되었네. 난 지금 그 사람과 평생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어. 그 사람의 존재는 내가 날 변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고, 지금까지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가 됐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 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 10년이 지난 지금 뒤돌아 보면 그 사건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끝없이 아프기만 한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는데도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다시 사랑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고, 변할 수 있다고 믿었고, 끊임없이 노력했어.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건 변한 나 자신을 보여주고, 증명해 내는 것이었어. 사랑에 자격이라는 것은 없지. 하지만 내 어떤 한 부분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면 고쳐야 하고 변해야 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그런 사람이라면 변하지 못할 이유가, 노력하지 못할 이유가, 그 사람과 다시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어.
지금 네 모습을 보면 과거의 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선 것 같아. 난 그런 너에게 빨리 그 터널을 뛰어서 빠져나오라고 재촉하지 않을 거야. 터널이 어두워 빛이 보이지 않아도 천천히 걸으면서 그 시간을 온전히 느꼈으면 좋겠어.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 상처를 줘서 후회가 됐던 일들,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고, 느끼고, 그리워하고, 계속 사랑하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마르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없는 답답함에 사로잡혀도 계속 추억하기를 바라. 어떤 노래를 들어도,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어떤 책을 읽어도 모든 게 그 사람과 연결돼서 더 깊은 감정을 느끼렴. 그리고 그 느낌을 계속 간직하고, 그리워하고, 후회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길이 보일 거라고 믿어 난. 그 사람과 다시 함께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 올 거야.
이별은 너무 아프지만, 그 이별이 뒷걸음질이나 정지가 아닌 한 걸음 더 내딛게 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고, 난 그렇게 믿고 있어. 실제로 그러했고.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른 뒤엔 너도 알게 될 거야. 함께한 시간이 많을수록 모든 것에서 상대방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 사소한 것 하나에라도 그 사람이 떠오를 때면 기억하고 간직하고 쌓아가렴. 힘들어도 그렇게 추억하고, 아파하고, 견디고 버텨내렴. 의도하지 않아도 빛이 보이고 출구가 보이게 될 테니까. 힘내.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아도 끝은 있고, 곧 빛이 널 비추게 될 거야. 그러니 계속 그렇게 걸어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