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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엔 순서가 있다.

마라닉 러닝 30일 챌린지 11일차

by 박이운

11일차 러닝 플랜은 1분 걷기 + 3분 달리기 인터벌로 30분을 달리는 것이다. 이틀 전 9일차에 2분 걷기 + 3분 달리기를 무리없이 해냈기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10분이 지나자 몸이 급속도로 무거워지고 평소보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달릴 땐 2분이 지나면 자꾸 시계를 보며 3분이 되길 기다렸고, 걸을 땐 1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그냥 힘들었단 이야기다.


반환점을 돌아나와 달리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 국토횡단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연히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부모님의 가정 교육 철학에 의해 보내졌다. 처음엔 마냥 신났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버스를 타고 동해로 이동해 배를 타고 울릉도를 가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울릉도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했는데, 울릉도는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성인봉을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바닷가에서 신나게 물놀이도 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고생은 다시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는 매일 30km 가량의 걷기 강행군이 매일같이 이어졌고, 먹는 것도 많이 부실했다. (다녀와서 무얼 먹고 다녔는지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 그 단체를 욕하셨다. 돈을 그렇게 받고 애들을 굶겨? 하시면서.) 발엔 여기저기 물집이 잡혔고, 선크림이라곤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라 피부는 온통 새카맣게 타버리다 못해 얼굴 전체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점점 걷는 것에 탄력이 붙긴 했지만, 일반 도로만 걷는 것이 아니라 산을 넘어 다니기도 했던 탓에 그다지 익숙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로 국토 횡단을 마쳤다. (가리왕산 꼭대기에 올랐을 때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는데, 뿌연 구름 속에서 구름에 옷이 젖으면서도 기분 좋게 풀밭에 누워 쉬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이 국토횡단을 다녀와서 참 신기한 일이 생겼다. 2학기가 개학하고 체력장이 열렸는데, 운동으로는 그렇게 특출나지 못했던 내가 오래 달리기를 육상부 바로 아래 기록으로 달린 것이다. 난 그저 보름이라는 기간동안 걷기밖에 한 것이 없었는데 오래 달리기를 잘 하게 되었다. 그 때 모든 일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국토횡단을 다녀와서 오래 달리기를 잘 하게 됐던 경험을 떠올리자 다시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 이 정도의 힘듦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앞선 단계를 밟아 왔기 때문이고, 또 오늘 이 힘듦을 이겨내고 달리면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이 나로 하여금 계속 달리게 만들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 11일차 러닝을 완수했고, 끝까지 달려낸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난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쉽게 포기하던 나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어떻게든 해내는 나로. 아직 부족할진 몰라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 순서대로. 단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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