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 가졌다.

마라닉 러닝 30일 챌린지 19일 차

by 박이운

스스로를 불행이라는 감옥에 가둬놓고 창문 하나 달아주지도 않았던 내가 어떻게 불빛 하나 없는 감옥에서 햇살과 행복이 가득한 양지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지난 3월에 아이 돌 사진 촬영을 위해서 여름휴가를 앞당겨 사용해 일주일간 한국에 간 일이 있는데, 마침 내가 한국에 머무는 기간에 내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일정이었다. 내 생일날 아내와 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러 갔다.(중국에 있으면 한국식 짜장면과 탕수육이 그렇게 그립다.)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물었다.


"오빠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사실 지난 2월 구정 연휴에 한국을 들어갔을 때 아내가 내 해진 백팩을 보고 몰래 면세점에서 백팩을 주문했고, 내가 중국으로 돌아올 때 받아온 적이 있다. 난 당연히 그걸 생일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또 갖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묻길래 고민 않고 이렇게 답했다.


"응, 갖고 싶은 거 없어. 난 다 가졌거든. 여보랑 우리 아이랑."


아내는 또 실없는 소리 한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는 내 어깨를 한번 툭 쳤다.


아내 앞에선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난 내 인생이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해 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고 우리 집이 좀 더 여유로웠다면,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어서 좀 더 많은 경제력을 갖고 있었다면 등등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이랬다면 저랬다면이라는 말을 애써 되뇌며 현재를 불만족스러워했다. 불만족은 우울과 화를 낳는다. 내가 불행했던 이유다.




스스로를 불행이라는 감옥에 가둬놓고 창문 하나 달아주지도 않았던 내가 어떻게 불빛 하나 없는 감옥에서 햇살과 행복이 가득한 양지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러닝이다. 러닝을 시작한 첫날부터 정말 거짓말같이 우울감, 무기력감 그리고 화까지 점점 내 몸과 마음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면 지금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두 번째 단계에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단계는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껴지고 그저 온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하게만 보인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는 말은 사실 반은 틀린 말이다. '난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네? 부족한 것이 없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뭘 갖고 있고 뭐가 없는지 그 문제 자체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 '셈'을 하지 않기에 부족함을 따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스레드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서로 응원과 격려만을 주고받는 러너들과 소통하면서 세상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18일 차 글 '어쩌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일지 몰라' 참조)


운동을 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많고 책도 많다. 뇌과학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런데 난 그런 것들은 잘 모른다. 그냥 손이 가는 책을 읽었고, 다 읽으니 뛰고 싶었고, 뛰었더니 이만치 달라진 것이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한 번 운동화 끈 졸라매고 뛰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산증인이 바로 여기 있다. 불만족이 극에 달해 불행하기만 했던 사람이 가진 것 못 가진 것을 따지지 않게 됐을뿐더러, 그냥 지금의 내 존재 그대로 행복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행복함을 느끼며 산다고 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 것인 아니다. 언젠가 나의 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달렸더니 달라졌다.

달렸더니 계속 달리고 싶어졌다.

달렸더니 이제 길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어쩌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일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