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닉 러닝 30일 챌린지 26일 차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뜬다. 도시가 아직 잠에 취해 있을 때, 조용히 신발끈을 조이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드는 순간의 예리함을 느끼며 한 걸음씩 달리기 시작한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 나와 길, 그리고 내 숨소리만 존재한다. (공원에 도착하면 새소리도 들린다.)
러닝을 하면 —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 근육통이 심했다. 발목, 종아리, 고관절, 허리까지, 마치 내 몸 전체가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라고 항의하는 듯했다. 걸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통증 속에서 묘한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내 몸이 변화의 증거를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달린 지 26일 차인 지금, 그 격렬했던 근육통은 조용한 대화로 바뀌었다.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러닝으로 조금씩 단련되어 가는 내 몸처럼 내 마음도 예전보다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예전의 나는 유리처럼 쉽게 무너졌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 탓에 작은 말 한마디에도 하루가 흔들렸고, 누군가의 무심한 표정 하나에도 며칠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옭아매곤 했다. 하루가 조금 어그러지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쓰러져갔다. 가장 싫어했던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며 침대에 파묻혀 한숨 쉬는 날이 수없이 많았다. 내가 가장 자주 하던 혼잣말은 자조 섞인 "내가 그렇지 뭐"였다.
하지만 러닝을 하면서 내 안의 모든 감정들이 조용히, 아주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쉽게 지치던 내 마음이 이제는 그렇게 쉽게 지치지 않는다. 감정의 기복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더 잘 다루게 되었다. 피하기만 하던 유무형의 두려운 대상 앞에서도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마주 보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건 근력이구나. 몸에 생기는 근육처럼, 마음에도 근력이 생긴 거구나.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나를 비난하지 않고 오늘의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정하게 되었다.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여유와, 다른 사람의 실수를 흘려보낼 수 있는 너그러움은 덤이다.
지금도 여전히 달릴 땐 숨이 차고, 발목과 무릎에 통증이 생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통증이 내 몸이 단련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몸뿐 아니라 마음도 같은 여정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도. 러닝은 몸을 위한 운동이지만, 삶을 위한 연습이기도 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내 한계를 넘는 법을 배운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다리가 무거워져도 계속 나아가는 끈기를, 그리고 매일 아침 운동화를 다시 신는 일상의 소중함을.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의 근력을 느끼며, 새벽의 고요 속에서 조용히 운동화 끈을 맨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의 나는 어디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