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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Apr 22. 2023

7. 병원에서 확답을 듣기 어려운 이유.

상상과 의지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 Chat GPT에게 물어보았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그 종류와 강도가 다르다. 그리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언급하였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순위는 어떨까? 그간의 심리학적 연구들과 통계를 바탕으로 가장 큰 두려움부터 순위를 물어보았다.


8가지 정도의 순위를 뽑아주었다. 첫 번째 질문에서 언급한 대로, 1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Fear of the unknown',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고소공포증보다 낮은 6위란 점이다.


1위와 6위의 두려움을 합치면, 환자의 두려움이 된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두려움, 특히 암 환자나 중환자들의 경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상당하다. 더불어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면서 본인의 경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안 좋은 결과에 대한 불안감에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조차 받지 않는 환자도 있다. 한 가지의 두려움만 가져도 충분히 괴로운 인간이지만, 환자는 두 가지의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다. 일반인보다 훨씬 더 나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해결 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답답한 환자


병원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속 시원하게 답해주는 의사는 몇 없다.


Q1. 조직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 A1. 대략 1-2주 정도 걸립니다.

Q2. 언제부터 정상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 A2.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약 1-3개월 정도 걸릴 수 있습니다.


'대략, 약, 보통.' 정확한 기간을 답하지 않을뿐더러, 그 기간의 범위도 상당히 넓다. 특히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긴 항암치료의 시작 유무가 결정되는 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1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1-2주 정도라면 대략 7년 가까이 기다리는 느낌일까.


Q3. 완치 가능할까요?

- A3. 치료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Q4. 항암 치료가 꼭 필요한가요?

- A4. 검사 결과 확인 후 경과를 봐야 합니다.


아마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라는 말은 의사들이 쓰는 가장 흔한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대답인 줄 알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정보가 제한적인 환자는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서 무궁무진한 상상을 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의 상상은 끝없이 이어진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을 한 후에, 더 한 최악을 상상하기도 한다. 상상의 무서운 점은 본인이 상상하는 상황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조심스러운 의사


환자를 보다 보면 환자마다 개인차가 상당하다. 현재 질병과 별개로 환자가 가진 기저질환의 종류도 다르다. 기저 질환이 많은 환자의 경우 그 경과도 예측불허이다. 심지어 건강한 성인에게 같은 약을 써도 반응이 다른 경우가 다반사이다. 약의 용량을 조절하고, 종류를 바꿔보는 등 개개인에 해당되는 경과와 치료가 달라진다.


환자 수가 많은 것도 한몫한다. 규모가 큰 대학병원 교수들의 외래 한 타임, 한나절 동안 보는 외래 환자의 수는 50-100명 정도 된다. 하루 오전 3-4시간 동안 100명 가까운 환자들을 보면, 말 그대로 '별의별" 사람을 다 본다.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립된 치료가 존재하고, 대략적인 경과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100%라는 것은 없다. '별의별' 환자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특히나 수술 동의서 설명 시에는 최악의 상황까지 설명을 한다. 일부러 더 위험한 상황에 대해 미리 워닝(warning)을 해둔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해 동의를 받아 놓는 것이 의사 입장에서는 안전하다. 수술 중이나, 수술 후 경과가 좋지 못해 소송이라도 걸릴 시에는 수술 동의서의 단어 하나, 표시한 밑줄 한 줄이 중요하다.

https://m.medicaltimes.com/News/NewsView.html?ID=1133342

코로나 이전 시기 의료 분쟁 통계를 조사해 보았을 때 해마다 증가 추세였다. 소송의 승패 여부를 떠나 환자와 적대관계를 맺게 된 상황 자체가 의료인에게는 스트레스이자 큰 심리적 위축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확답을 지양하고,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을 일부러 더 언급하며 방어진료를 하는 의사를 비난할 순 없다.


결국 중재안은 '확률'이다. 그동안 환자를 보며 누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몇 퍼센트의 환자군에서 경과가 좋아지는지, 몇 퍼센트의 확률로 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지 등은 객관적 수치로는 알려줄 수 있다. 이렇게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의사는 환자를 본 경험이 풍부해야 할 뿐 아니라, 꾸준히 논문을 가까이해야 한다. 환자를 보는 한, 의사가 평생 공부를 하는 직종인 이유 중 하나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최근 개인적인 사유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컸다. 해당 기간 동안 무궁무진한 상상을 하며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고, 그보다 더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극심한 공포를 경험하고 나서 환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달라졌다. 환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루틴 하게 해 오던 "경과를 봐야죠."대답은 환자의 두려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대신 "경과를 봐야죠. 그런데 괜찮을 가능성이 더 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덧붙이게 되었다. 확신시키는 대답은 못하더라도 희망적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안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계나 의료계 등 전문가의 말 한마디 사람들에게 상상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신뢰성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환자의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 법조계 자문을 구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인 "로톡"이 성공한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다음은 에밀 쿠페의 저서 '자기 암시'에 나온 구절이다.

의사라는 직함만으로도 피시술자에게 암시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만일 의사가 환자에게 병을 치료할 수 없으며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면, 환자는 스스로 최악의 암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반대로 병은 깊으나 정성과 시간을 들이며 인내심을 가지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면, 놀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치료는 환자와 의사가 함께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의지가 없거나 비관적이라면 그 과정이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전긍긍하는 환자의 불안을 의사가 오롯이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의사는 진료과정에서 긍정적 암시와 상당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상상과 의지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성취를 원하거나, 특정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할 때 의지를 강조한다. 지금의 힘든 상황에 반하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해낼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상이다. 상상과 의지를 비교하면 항상 상상이 의지를 이길 수밖에 없다. 올림픽 100m 육상 기록 마의 10초 대가 깨지기까지는 거의 50년이 걸렸다. 하지만 1960년대 처음으로 10초의 벽이 깨진 순간부터 9초대 기록의 소유자가 몇 년 사이에 여러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100m 9초의 기록이 가능하다는 상상은 많은 선수들을 실제 기록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상상과 의지가 결합될 때 현실화 이루어진다.


의사는 환자를 바로 낫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상상하게 할 수는 있다. 긍정적인 상상의 다른 말은 희망이다.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닌,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전문지식에 근거한 희망을 제시해 주는 병원 생활이 되길 바라며.



알아두면 좋은 병원 상식 시리즈는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communication quality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병원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만 병원 밖 사람들에게는 낯선 병원 상식을 연재합니다. 또 다른 궁금증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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