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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Oct 18. 2023

8년 전 의대 입학 면접 스토리.

각국 어디에서나 의대는 경쟁이겠지만, 유독 한국에선 그 경쟁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수능에선 사람이 아닌 성적을 받아야 의대를 들어갈 수 있었다. 과거에는 수능 대신 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대부분 사라졌다. 고등학교의 괴물들이 의대에 들어간다. 오늘 대화를 나눴던 미국 인턴은 한국 레지던트라는 소개에 "You are a smartass"라고 했다. 한국의 의대 입학 경쟁을 들어서 알고 있다며 그때부터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실 Smartass는 내가 아니라 의대 동기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타 대학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바로 입학한 동기들은 천재들이 많았다. 수업 때는 항상 졸지만 시험만 보면 1등 하거나, 한 번 훑어보면 사진 찍듯 기억을 하고,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해야 한다며 메커니즘을 줄줄 읊는 친구 등. 같이 공부하면 정 떨어지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이 친구들 덕분에 평범했던 본인은 엉덩이로 승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엉덩이 싸움 덕에 천재들 사이에 껴서 어떻게 졸업을 하긴 했다.


괴물 같은 동기들과 나의 입학 루트는 달랐다. 군대에서 진로를 결정한 탓에 뒤늦게 의대 준비를 했다. 당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사라져 갔고 그 대신 학사편입이라는 제도가 한시적으로 존재했다. 학사편입은 각 학교마다 선발 기준이 달랐다. 모교의 특이한 입시요강 중 하나는 독후감이었다. 1차 선발을 통과하면 2차 선발 시에는 독후감과 면접만을 50:50의 비중으로 평가했다. 당시에도 책과 글쓰기에 흥미가 있던 터라 1차만 통과한다면 독후감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모교를 지원했다.


12명 모집에 3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25:1에 가까운 경쟁률이었다. 과연 이들 사이에서 1차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4배 수인 48명 안에 들었다. 2차 선발은 제로베이스에서 4:1의 경쟁을 해야 했다. 2차 선발은 하루 만에 이뤄졌다. 48명이 한 곳에 모였다. 먼저 독후감을 쓰고, 순서대로 면접을 본 후에 퇴실하였다. 당시 기억에 따르면 인생 책과 그 이유, 의사가 되고 싶은 동기에 관련된 글을 썼다. ‘어린 왕자’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이 두 책을 바탕으로 독후감을 썼다. 생각보다 글은 잘 써졌고 나름 자신감 있게 독후감을 제출했다. 남은 건 면접이었다.


면접장에는 4개의 방이 있었다. 4명씩 면접장에 들어가 1명씩 각 방으로 들어갔다. 한 방당 3명의 교수님들이 계셨다. 면접자는 한 명, 교수님 세 분이서 지원자 한 명을 면접 보는 시스템이었다. 어떤 방을 들어갈지, 어떤 교수님과 면접할지는 랜덤이었다. 당시 배정되었던 3번 방 교수님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운데 앉으신 여자 교수님은 무표정에 포스가 어마어마했다. '후생유전학'이란 예상치 못한 주제와 긴장한 탓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지성 면접 질문들에 쩔쩔매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교수님들은 의례상 하는 질문인 인성 질문 몇 가지를 한 후 면접은 종료되었다.


면접장을 나오고 보니 나머지 세 방의 지원자들은 아직 한창이었다.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관심 있는 지원자 치고 이렇게 빨리 면접을 끝냈을 리가 없었다. 고민도 없었다. 면접장을 다시 들어갔다. 양해를 구하곤 그 자리에서 나오는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요즘 랜덤 영어 단어장 어플을 쓰고 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새로운 표현이 나온다. 면접인 오늘의 새로운 표현은 ‘now or never’이었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의미이다. 오늘 아주대 면접을 올 때 ‘now or never’을 마음에 새기며 왔다. 후회 없이 면접을 보고 싶었지만 긴장한 탓에 아쉬운 면접을 본 것 같다. 오늘은 비록 아쉬운 모습을 보여드렸지만 합격 후 의대에서 다시 보신다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8년이 지난 탓에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대략 이 정도의 내용이었다. 그제야 가운데 포스 넘치는 여자 교수님이 웃으며 질문을 하셨다.


“그래 오면 무슨 과 하고 싶니?”
“외과 하고 싶습니다.”
“그래, 이국종 닮았네. 그만 나가봐.”


이렇게 진짜 면접이 종료되었다. 그 후 사실 기대도 안 했다. 면접을 죽 쑨 탓에 당연히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독후감을 얼마나 잘 썼기에 면접을 커버한 것인지 의문을 가득 가진 채 입학했다. 입학 후 지도 교수님과의 첫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합격한 이유는 독후감이 아니었다. 독후감 성적은 48명 중 절반이었다. 오히려 면접이 1등이었다. 다시 면접장에 들어간 당돌함을 좋게 보셨는지, 나의 진심이 전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면접 성적을 가장 높게 주신 것이었다. 더 놀란 건 후에 동기들과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들어간 면접방에서 나온 합격자는 나밖에 없었다. 면접 성적을 가장 짜게 주시는 세 분이 모인 방이었던 것이다.


8년 전 면접방을 다시 들어간 사건은 나의 인생 트랙을 바꿔놓았다. 덕분에 의대를 입학할 수 있었고, 치열하게 공부하며 평생을 함께할 동기들이 생겼다. 그리고 면접방에서 언급한 대로 외과를 선택해 이제 곧 펠로우를 앞두고 있다.


면접 1등이란 우연은, 생소한 주제가 면접 질문이었던 행운으로 촉발되었다. 덕분에 무례를 무릅쓴 용기가 생겼고,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사실 현재에서 바라본 과거의 모든 점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불행을 가장한 행운도 있었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점들을 필연과 행운의 결합이라 여긴다면, 조금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란 8년 전 면접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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