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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Sep 16. 2023

더럼(Durham) 첫 주차, 아침 러닝과 아침 인사

Good morning.

#1. 1년 간 준비했던 duke 적응기


주말 간 시차 적응에 사경을 헤맸다. 낮엔 이불속에서 나올 수 없었고, 새로운 도시인 더럼(Durham)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도착 후 동네 한 바퀴면 금방 적응할 줄 알았지만, 해 질 무렵 나온 더럼은 무섭기만 했다.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집과 집 사이 나무들은 마치 숲처럼 울창했고 영화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미국 마을이었다. 동화 속에 나올법한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마주 보는 도로와 집 사이 간격은 하나의 집을 더 지어도 될 만큼 넓었다. 넓은 면적 탓인지 좀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나마 차 한두 대가 느린 속도로 지나다닐 뿐이었다.


집 앞만 나와도 수십 명을 볼 수 있었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한국이 늦은 밤까지 안전한 이유는 좁은 땅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좁은 면적 안의 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소극적인 순찰자였다. '사람들 눈'은 생각보다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었던 셈이다. 더럼에서 걸어가는 1km 동안 행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과연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분명 집들은 깔끔했고,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잘 정돈된 집들에 깨끗한 거리를 걸으며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첫 출근의 시작은 아침 러닝이었다. 병원이 자전거로 20분 거리라 비교적 출근 전 여유가 있었다. 천천히 러닝을 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으로 좌우를 자주 살폈다. 하지만 월요일의 아침은 달랐다. 반려견과 함께 아침 러닝을 하는 몇몇이 나타났다. 집 마당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좌우를 돌아보는 대신 좌우 이어폰을 착용했다.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를 틀곤 맘 편히 러닝을 시작했다. 마을을 도는 코스였지만 폭넓은 도로와 곳곳의 나무들 덕분에 꽤나 상쾌했다. 집마다 다른 특색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발이 가는 대로, 눈도장을 찍듯 낯선 동네의 곳곳을 보고, 다녔다.


한국과 차이점이 있었다면 탈의를 한 채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항상 몸에 붙는 땀 젖은 상의가 답답하던 차 자연스럽게 상탈 러닝에 동참했다. 그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은 '인사'였다. 한국에서 주말 아침 러닝을 몇 년간 했었지만 단 한 번도 마주치는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맞은편에 누군가가 보이면 눈을 피하기 바빴다. 괜한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눈 맞춤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인사와 함께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인사를 해주었다. 심지어는 집 문을 열고 나오는 아저씨까지 멀리서 손인사를 해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닝'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주민들이 흑인이던 백인이던 상관없었다. 어제의 괜한 기우를 씻어준, 시차 적응을 조금은 앞당겨준 러닝이었다. 단 하루의 아침 인사들로 더럼은 훨씬 더 안전한 동네가 되었다.


"You made my day." 동네 사람들의 아침 인사 한 마디는 시작하는 나의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동네를 떠나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방법은 따로 있지 않았다. 미소 한 번, 짧은 아침 인사 한 마디면 충분했다.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한국에선 단 한 번을 못했다. 문화적인 차이로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하루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사였다. 문득 항상 "수술하기 좋은 아침이에요 여러분~"이라며 첫 수술을 들어오시는 교수님이 떠올랐다. 당시엔 속으론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수술 전 알게 모를 긍정적인 기운을 받았다.


물론 출근길에 수백 명을 마주치는 한국과 미국의 마을 출근길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출근 후 같은 공간 안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눈을 피하기보다 아침 인사를 건네보는 게 어떨지..



"좋은 주말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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