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는 한 번씩 온 병동에 울리는 방송이 있다. 이 방송은 병동과 외래뿐 아니라 화장실, 식당, 병원 연결 통로에서도 울린다. 매번 방송이 시작되는 신호음은 일정하고, 목소리 톤도 고정되어 있다. 백화점에서나 들릴 법한 깔끔하고, 단조롭기 그지없는 목소리지만 방송에 담긴 내용은 그렇지 않다.
" ♬♪♩ ~ 코드블루 본관 11층 관찰실, 코드블루 본관 11층 관찰실 ♬♪♩ ~ "
코드 블루란 원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알림이다. 누군가는 이 방송을 듣고 걸음이 빨라지거나, 행선지가 변경되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뛰어오르기도 한다.
이틀 전에도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식당에서 갑자기 코드블루 방송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앞자리에서 밥을 먹던 인턴 선생님 한 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식판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식판에는 밥과 반찬이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잠깐 고민을 하더니 무거운 식판을 그대로 버리고 돌아왔다. 그리곤 마스크를 챙겨 황급히 뛰어나갔다.
아마 코드블루를 띄운 병동은 난리 법석일 것이다. 스테이션은 분주하고 레지던트들과 교수님들이 속속 모인다. 수십 개의 처방이 동시에 나고, 처방과 동시에, 때로는 처방보다 더 빠르게 간호사 선생님의 액팅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턴 선생님들은 대개 CPR(심폐소생술)을 직접 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심폐소생술이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심해 혼자서는 절대 지속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손을 바꿔가며 시행해야 효율적인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서너 명의 인턴 선생님이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심정지 환자의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해 환자 심장 역할을 인턴 선생님들이 대신해 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코드 블루 상황의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인력이 인턴 선생님들인 것이다. 이 선생님들 덕분에 주치의와 교수님들은 조금 더 침착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처방을 내며 응급 플랜을 설정할 수 있다.
나 또한 이랬던 인턴 시절이 있었다. 마치 몇 분, 몇 초 늦으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뛰어다녔다. 1층서부터 8층까지 뛰어올라간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열정이 활활 타오르던 시기였다. 물론 지금도 코드블루 방송에 신경이 곤두서고, 우리 파트 환자이면 마음과 걸음이 급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온 병원의 코드블루에 반응하던 인턴 시절과는 다르게, 울리는 방송에 내 환자는 아니겠지란 안일한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허둥지둥 뛰어다니며 나의 무지에 여러 번 긴장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다만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먹던 밥을 다 버리고 뛰어가던 인턴 선생님의 노고를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은 아니지만, 인턴 선생님의 초심과 어느덧 레지던트 막년차의 매너리즘이 극명했던 어느 점심시간의 단조로운 코드블루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