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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ㅛㅏ Sep 02. 2022

응급실 근무 중 고소한다는 환자

당직과 직무 유기

이번 달 응급실도 다사다난했다. 개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단연코 새벽에 환자와 보호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사건이다.


배가 아파서 오셨던 할머니였다. 몇 년 전 유방암 수술을 본원에서 하셨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응급의학과에서 시행한 검사를 보니 급성 담낭염이었다. 담낭염은 수술로 담낭을 제거해야 하는 질환이다. 하지만 환자 전신 상태와 기저력 및 수술력을 고려해 담낭에 배액관을 먼저 삽입할 수도 있다. 이 결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병원 사정 및 담당 의사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할머니는 오후 3시에 도착하셨다. 연고지인 대전 병원에서 담낭염이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되어 본원 인 서울로 온 것이다. 이전에 수술도 받았고, 환자 기록도 가지고 있으니 본원이 더 안전할 거라고 판단하신 것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대학병원 응급실 진료는 대기 시간이 길다.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엔 더욱 대기가 길다.


먼저 응급의학과에서 할머니의 초진을 보았다. 기본적인 피검사를 하고, 증상에 맞게 X-ray 등의 필요한 검사를 했다. 이전 병원에서 가지고 오신 CT 등의 자료를 등록하고 영상의학과와 함께 리뷰도 했다. 그다음 외과에 진료 의뢰가 되었다.

진료 의뢰 시엔 이런 문자와 함께 전화가 온다


처음 환자 이름과 정보를 본 시간은 새벽 2시였다. 비몽사몽으로 환자 파악을 한 후 응급실로 내려갔다. 신체 진찰을 하고 몇 가지 필요한 추가 검사들을 더 처방하였다. 수술 가능성도 있어 여전히 금식은 유지시켰다. 담낭염이 의심된다는 말과 함께, 배액관 삽입 또는 수술 가능성, 수술 시엔 본원에서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보통 정규 수술 스케줄로 꽉 차 있는 본원에선 정말 응급질환이 아니고서야 중간에 끼어들어가기가 어렵다. 담낭염, 충수염은 응급실에 오는 환자 수가 많다보니, 본원에선 수술이 필요할 때 연계된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 보내는 편이다.


추가 처방했던 검사를 기다린 후 담낭 파트 담당 교수님을 새벽 5시에 깨웠다. 여러 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환자 노티를 하고 최종 결정은 수술을 위한 전원이었다. 그리곤 환자 설명을 하기 위해 응급실로 내려갔다. 설명하기 전부터 보호자와 환자는 긴 대기 시간에 화가 잔뜩 나있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듯,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라는 말에 보호자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환자를 12시간 넘게 금식을 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

"대전에서 서울까지 왔는데 다른 병원을 가라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다른 병원 가라 할 거면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냐."

"침대 자리도 안 주고 환자 앉혀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대답할 틈도 없었다. 보호자인 딸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응급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도 중간중간 덩달아 소리를 지르셨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 또한 사람인지라 그 새벽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었다. 같이 싸우고 싶었지만 겨우 참으며 조곤조곤 설명을 드렸다.


"급하게 시술이 필요할지, 수술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식 유지는 필요했다. 침대 자리를 못 드린 건 그만큼 중증도가 높지 않아서이다. 다른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더 많다. 그리고 진료과 선생님들이 항상 새벽에 깨서 대기 중인 것은 아니다. 추가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설명을 드려도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한 환자와 보호자는 진정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를 더 하셨다.


" 의사면 당연히 새벽에 환자를 바로바로 보러 와야 하는 거고, 이렇게 기다리게 한 거에 대해서 고발할 거다."


더 이상 대화를 하면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렇게 하시라하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갔다. 이분 말고도 봐야 할 환자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환자도 좀 가라앉은 후 다시 찾아갔다. 결론적으로는 본원 진료를 강력히 희망하셔서 담당 교수님과 상의 후, 외래를 잡아드리는 걸로 일단락을 지었다. 끝까지 본인이 좀 전에 화가 났던 이유를 설명하는 보호자를 뒤로 하고 퇴근 준비를 했다. 퇴근길이 그렇게 힘 빠지는 건 또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날은 한숨도 못 잤다.


보호자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의사면 당연히 새벽에 환자를 바로바로 보러 와야 하는 거 아니냐."   의구심과 함께 서운함이 몰려왔다. 응급실 근무 24시간은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 당직 의사의 임무이며, 어떤 이유에서건 환자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올바른 의사인 것일까? 그동안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던 걸까?






내일은 마지막 응급실 당직이다. 35일간의 퐁당퐁당 근무가 드디어 끝난다. 이틀에 한번 당직서는 시스템을 퐁당퐁당이라 한다. 이름은 응급실이지만 차분한 응급 당직인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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