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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 회의 (Sarcoma meeting)

by 글쓰는 외과의사

살코마란 육종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sarcoma’, 한글로는 ‘육종’이라 부른다. 모두 이름만 들어도 어마무시한 느낌이 든다. 질병코드 또한 암으로 분류되는 육종은 실제로도 어려운 질환이다. 더불어 흔하지도 않다. 크기는 손톱만 한 것부터 몸통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것까지 다양하다. 이번 주에는 뱃속 40cm 크기의 육종 수술도 있었다. 치료 방법으로는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 양성자 치료 등이 존재한다. 이렇게 치료 방법이 많다는 것은 정답 같은 치료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환자마다 다른 육종의 위치, 침범한 장기의 종류, 조직 병리학적 특징 등 고려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본원에서는 치료 방침 상의를 위한 '살코마 미팅'이 존재한다.


살코마 미팅에는 다섯 과가 모인다. 항암을 담당하는 혈액종양내과, 방사선 치료의 방사선종양학과, 병리 판독의 병리과, 영상 판독의 영상의학과, 그리고 수술 여부를 판단하는 외과다. 총 5개의 각기 다른 과들이 한자리에 모여 육종 환자 케이스들을 살핀다. 흔하지 않은 질환이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큰 병원으로 육종 환자들이 몰린다. 각 과 외래에서 어렵다고 판단된 환자가 목록에 오른다. 한 번의 미팅에서 다루는 환자는 15명 안팎, 이 자리에서 치료 방향이 결정된다.


첫 케이스는 배뇨 불편감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거대 육종이 발견된 남자 환자였다. 영상의학과 교수님부터 시작하셨다. ‘튜머(Tumor)는 골반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튜머 사이즈는 3개월 사이에 급속도로 커졌으며 현재는 20cm 정도로 골반 안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병리과 교수님이다. ‘트랜스 렉탈(항문을 통과하여 시행하는 초음파 및 조직검사)로 시행한 조직 검사상에서 의미 있는 검체가 확보되지는 않았습니다. 살코마와 다른 암 등을 감별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조직 확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혈액종양 교수님은 수술로 제거 가능 여부를 물어보셨다. 외과 교수님께선 ‘이미 방광과 직장을 전부 다 종양이 침범하고 있어 보입니다. 골반 깊숙이 위치하고 있어 수술이 어렵습니다.’라고 하셨다.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님께서도 지금은 조직 검사를 한 번 더 해보는 게 우선이라고 하셨다. 환자의 플랜은 직장으로 바늘을 넣어 재조직 검사 후 장루(배꼽 옆에 만드는 인공 항문) 형성 수술, 그 후 항암 또는 방사선 치료로 정해졌다.


컨퍼런스 홀에서 결정되는 치료방침은 영상과 조직 슬라이드, 몇 가지의 병력과 피검사 결과면 충분하다. 전문의 교수님들 5분의 상의는 꽤나 명확한 치료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 병변의 위치와 모양에 대한 의견 일치, 그간의 경험과 데이터에서 나온 치료 가능 여부는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내게끔 도와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자의 히스토리를 알게 되면 단순히 케이스 1번으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경남에 살고 있는 46세 남성, 비교적 젊은 환자이다. 환자의 짧은 외래 기록에는 배뇨, 배변 장애가 기입되어 있다. 이 환자는 아마 1-2주 이내에 다시 입원해 한 번 더 조직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그 후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걸리는 1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다시 외래를 방문해 검사 결과와 치료 방향이 결정되는 데에는 적어도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종양은 얼마나 더 커질지, 이번엔 어떤 장기를 밀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지속되는 배뇨 불편감은 신장 기능을 나빠지게 할 것이고, 배변활동을 방해하는 종양은 변비와 복통을 유발할 것이다. 불확실한 기간 동안 직장 생활은 물론이며, 일상생활까지 불가할 수도 있다. 여기에 필히 동반될 정신적 대미지는 가히 환자가 아닌 사람들은 상상할 수가 없다. 갑자기 생긴 배뇨 장애에 환자는 아마 청천벽력과 같은 세상이 무너지는 선고를 받은 셈이다.


45분 남짓한 미팅 시간에 이러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순 없다. 환자 한 명의 히스토리를 떠올리는 순간 살코마 미팅은 한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더 많은 환자들에게 합리적인 치료방침을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환자의 사연에 치우쳐 객관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살코마 미팅에선 육종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 사람과 환자가 잘 구별되지 않는 본인과 같은 미숙한 의사에게 케이스에 뒤따르는 상상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 환자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환자가 그 병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라고 했던 윌리엄 오슬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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