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
운을 만드는 집 - 신기율
9월은 이사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다. 동생의 결혼으로 생각지도 못한 이사였다. 지난해, 18평의 작은 공간에 손수 가구를 고르고 벽지와 장판을 골랐다. 안방과 옷방을 꾸미고 기르고 싶은 식물을 골랐다. 비어있던 공간이 하나씩 채워지고, 1년쯤 지나자 이제 제법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편안한 기분이 느껴진다. 인간에게 공간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신기율'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터의 기운과 생명력을 인정한다면 인간이 만든 집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자연'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자신만의 기운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집이라는 공간을 좌우하는 가장 큰 에너지는 무엇인가.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삶의 에너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공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선 마치 인간과 자연이 별개의 개념처럼 여기지만 결국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땅도, 그 위에 세우진 집이라는 공간도, 그 안에 사는 사람 모두 자연이며 본연의 에너지를 가진다. 인간의 에너지는 공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믿기보다, 나 또한 이 공간의 일부인 구성원이며, 나의 에너지로 공간의 힘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가 집에만 오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들어지고 깊은 우울감을 느꼈던 것은 기분 탓도, 창밖의 한강 탓도 아니다. 지난 3년간 스스로가 집 안에서 뱉어냈던 탄식과 분노, 무기력한 말들과 행동이 쌓여 집 안의 공기를 어둡게 만들고 그의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부정적인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차츰 지쳐간다. 잘 되던 마인드 컨트롤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 시기에는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무엇이 원인인지 이유가 될만한 것들을 찾고, 바꾸면 나아질까란 희망을 품는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이 본인 우울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책의 한 인물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한강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는 결국 인간의 경험과 생각에 좌우된다. 한강의 물줄기를 바꾸기보다, 집을 바꾸기보다, 인간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올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에너지와 파장을 발산한다. 그 에너지는 크고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나와 공명하는 무언가를 끌어온다. 특히 그녀처럼 끌어오는 힘, 유인력을 믿는 사람들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으로 그리며 끌어올 대상을 먼저 설정한다. 그녀는 마치 아는 사람을 떠올리듯이 자신의 공간과 일을 그려냈고, 실제로 그것은 하나씩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시선이 느껴지고,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은 모두 에너지와 파장의 발산이 그 원인이다. 파장과 주파수, 에너지는 과학을 조금만 공부하다 보면 헛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나의 파장과 나의 에너지는 오롯이 내게 달렸다는 사실만 인지하면 될 뿐이다.
스페이스로지(Spacelogy), 즉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이는 내가 몸담고 있는 집을 '나와 가족을 돕고, 몸과 마음을 치유시키는 명당'으로 만드는 법이다. 평수나 가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스페이스로지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제2의 공간, '정서적 공간'에 대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공간과 정서적 공간. 7평이 채 안 되는 원룸에서도 정서적 공간의 평수는 70평으로 만들 수 있다. 정서적 평수를 확장시키는 행위들은 결코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물에 물을 주고, 주말이면 환기를 하고 침구류를 세탁하고,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의자만 마련되면 된다. 나를 지키고 집을 돌보는 행위는 정서적 평수를 무한히 확장시켜 준다.
공간이 주는 치유의 에너지는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더욱 강력하게 다가온다는 특징이 있다. 의사의 손을 뿌리치듯 공간을 느끼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하면 몸은 더디게 반응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듯 공간 역시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더 강한 에너지를 선물해 주는 것이다.
끊임없는 인지와 알아차림이 중요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터에 살고 있더라도 본인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시너지를 낼 수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선 결국 나를 먼저 잘 알아가야 한다.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어떻게 바꾸면 더 좋은 공간이 될까란 의문은 책을 읽고 나서 달라졌다. 집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에너지를 바꾸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이었다. 결국 집은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릇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태도로 하루를 보내느냐에 따라 공간은 달라진다. 지금 내 집은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다만 그 안에서 나를 더 아끼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작은 실천들을 하나씩 더해 가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