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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May 11. 2022

안부 전화가 필요한 이유.

전공의들의 안부 전화


각각 다른 대학을 2번, 총 8년간 대학 생활을 한 덕분에 동기들이 많다. 오늘은 무슨 날인지 저녁 시간에 갑작스럽게 예전 대학 동기들과 연락이 닿았다. 1학년 때 처음 만난 이 친구들은 벌써 알고 지낸지도 5년, 10년이 넘는다.


뜬금없이 전화 온 첫 번째 그룹은 6명이었다. 모두 동아리 친구들이었다. 외국인 교환학생을 도와주는 동아리였지만, 외국인보다 한국인끼리 더 친했다. 그동안 간간이 만나왔지만, 병원 일을 시작하고 벌써 못 만난 지도 1년이 넘어간다. 레지던트가 되고 바쁘다는 핑계로 모임에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통화를 했다. 형들 두 명은 벌써 결혼을 했고, 한 명은 아이가 생겼다. 여자애들 두 명은 이별의 아픔을 절절히 겪는 중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목소리가 한껏 어른스러웠다. 다들 각자의 이슈로 일상을 채우고 있었다.


두 번째 그룹은 의대 4년과 인턴 1년을 같이 했던 동기들 4명이었다. 1년 차가 지나고 이제 2년 차가 되더니, 주말이 좀 여유가 생겼나 보다. 마찬가지로 한 명씩 반갑게 인사했다. 별일 없냐는 인사로 시작해 서로의 짧은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괜스레 요즘 더 힘들다고 과장해서 얘기도 했다. 원래 레지던트들의 대화는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자랑하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정신과 2년 차인 친구는 응급실로 오는 정신과 환자들의 히스토리를 파악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응급의학과 2년 차인 친구는 술 먹고 오는 진상 환자들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내과 2년 차인 친구는 새벽에 호흡기 환자들이 아직도 무섭다고 다. 두 번째 그룹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파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학사 학위만 두 개라 쓸데없이 긴 가방끈이라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긴 가방끈 덕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동기들이 곁에 남았다.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더라도, 몇 개월씩, 몇 년씩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안부 인사가 고마운 이유는 누군가 날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한다는 관심의 표현이 안부 인사이기 때문이다. 삶은 주체적으로, 스스로 잘 개척해내야 한다고 여기지만 가끔 혼자서 내게 지어진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안부 전화는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진다. 실제로 안부 전화 한 통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는 많이 없다. 상대방이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구구절절한 위로를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안부 전화 한 통은 나의 정서를 건강하게 해 준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이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무의식은 '나'를 더욱 안정시켜준다.


어디서 누구와 관계를 맺더라도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란 알게 모를 자신감도 생긴다. 안부 전화 한 통 덕분에, 이 친구들과의 짧은 인사 덕분에 일상에서 속상한 일이 생기더라도 훌훌 털어낼 예정이다.


오늘도 통화는 곧 보자, 연락할게, 시간 한번 내보자 이렇게 불확실성이 가득한 말들로 끝났다. 하지만 올해가 가기 전 내가 먼저 확실한 약속을 잡기 위한 연락을 해야겠다.




p.s

안부 연락이 오는 것이 반가운 만큼, 다음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야겠다. 친구들의 전화 한 통이 나의 하루를 만들어 주었듯, 나 또한 친구들의 하루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란,,,,, 욕심 아닌 욕심을 내며 마무리.


800명이 넘는 번호 중 몇명이나 연락하고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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