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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Aug 07. 2023

마지막 제주, '통섭의 장' 파페로

한 달간의 제주 살이가 끝났다. 벌써 5번째 제주도였다. 파견 병원이 제주도에 위치한 덕분에 3년 동안 다섯 번, 다섯 달을 이곳에서 근무했다. 제주도를 이렇게 자주 방문할 줄은 전혀 몰랐다. 휴가로 방문하는 제주도라면 적극적으로 환영했겠지만, 일터로서의 제주도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불편한 기숙사에서의 타지 생활이 별로였고, 윗년차와 같이 쓰는 2인 1실 기숙사는 더욱 별로였다. 1년 차 때 김포공항에 캐리어를 끌고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어느덧 3년 차, 한 해 중 가장 성수기인 7월에 제주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했다. 띄엄띄엄 오긴 했지만 여러 번 왔던 터라 병원도, 병원 사람들도 이전보단 편했다. 그리고 연차가 올라간 덕분에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술방을 제외한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운 좋게 가끔 수술이 적은 하루가 있으면 마음껏 제주도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기저기를 다니다 어느덧 단골 가게가 생겼고, 아는 사장님들도 몇 분 생겼다.


단골 가게 중 하나가 '파페로(Papero)'였다. 작년 겨울, 친구의 소개로 처음 파페로를 방문하였다. 셰프님과 매니저님이 친구 지인인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음식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의 직업과 관계, 개인적인 대화들로 이어졌고, 자리가 끝나갈 때 즈음에는 어느덧 서로 SNS 주소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파페로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 후에도 종종 시간이 날 때면 혼자 파페로를 방문했다. 매니저님이 알려주는 와인 설명은 와인의 맛과 향에 눈을 뜨게 해 주었고, 셰프님의 이탈리안 화덕 피자는 피자를 안 좋아하던 나조차도 갈 때마다 주문할 만큼 특별했다. 프랑스에서 요리를 1년 반 동안 배워왔다는 셰프님이 왜 이탈리안 식당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문한 음식 중 실패했던 메뉴는 없었다.


사실 파페로가 갈수록 더 좋아진 이유는 요리와 와인이 다가 아니었다. 오픈 키친을 운영하는 파페로의 화덕에는 ‘통섭의 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주방과 홀, 셰프와 매니저, 그리고 손님들이 소통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겠다는 의미였다. ‘통섭의 장’ 답게 파페로에 방문할 때마다 늘 새로운 분들과 소통했었다. 주방이 보이는 바테이블에서 옆자리 대화를 드문드문 들을 수 있었고, 매니저님의 와인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자연스레 다른 손님의 와인에 관심이 갔다. 좋은 와인은 나누는 거라며 한 잔씩 건네주시던 아주머니 일행, 본인도 동향이라며 반갑다고 와인 잔을 부딪치는 옆자리 아저씨, 그리고 일을 도와주러 왔던 셰프님의 지인. 여러 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무수한 짧은 대화들이 오갔고, 그분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간접 경험하였다.


간접 경험의 하이라이트는 일일 아르바이트였다. 10년 만의 아르바이트였다. 제대 후 맥줏집 아르바이트를 3개월간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30대의 일일 아르바이트생은 앞치마부터 안 어울렸다. 병원에서 자신감 있게 환자들과 대화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와인 이름도 정확히 숙지 못하는 어수룩한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수저와 나이프 방향까지 헷갈리는 아르바이트생이 그 누구도 의사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내 어색한 내 모습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게 통섭일까? ‘큰 줄기(통)를 잡다(섭)’,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라는 의미가 ‘통섭’이다. 파페로는 내가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요식업이라는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었고, 음식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요리를 하면 어떤 맛이 나는지, 와인에 열정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술을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손님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통해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었으며, 10년 만의 알바는 같은 일상을 환기시켜주었다. 하얀 가운 대신 앞치마를 차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며 얘기하는 대신 손님 눈높이에 맞게 허리를 굽혀 대화를 하였다. 덕분에 보수의 끝판왕이라는 의사의 직군 안에만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더욱 겸손의 가치를 새기게 되었다.


마지막 제주는 내게 ‘통섭’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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