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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Sep 11. 2022

2. 쉴 새 없이 브런치 북 알람이 울린 하루


최근 몇 달 전부터 쉬는 날엔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변경했다. 당직 때 걸려오는 전화 스트레스가 그 이유였다. 병원 일을 하지 않는 시간만큼은 연락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무음 모드를 해놓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쾌적했다. 생각보다 급한 연락은 없었고, 전화를 못 받더라도 다시 걸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보통 본인이 기다리는 연락은 굳이 알람이 울리지 않더라도 늦지 않게 답장을 할 수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브런치 알람이 하루 종일 올라왔다. 물론 무음 모드여서 핸드폰을 켤 때만 확인했다. 평소 브런치 알람은 글을 업로드하는 날에만 간간이 울린다. 며칠 동안 글을 못 올리는 날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알람이 울릴까 말까 한다. 그간 경험에 의하면 오늘은 확실히 이상한 날이었다. 새로 뜬 알람을 삭제하기 무섭게 다시 브런치 알람이 올라왔다.


알람은 대부분 이전에 올렸던 브런치 북을 '라이킷'하는 알람이었다. '병원의 일상이 글이 되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전공의 일기를 엮어 만든 첫 브런치 북이었다. 약 2달 전 브런치 북을 발간하였지만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완독자 분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한 명씩 등장하셨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상당히 감사한 일이다. 더군다나 한 편의 글만 읽으시는 게 아니라, 브런치 북에 담긴 20편의 글을 완독 해주신다는 건 감사함을 넘어선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오늘 10분 간격으로 계속 올라오는 '구독'과 '라이킷' 알람에 마냥 감사할 뿐이었다.


하지만 자기 전까지 지속된 브런치 알람은 감사하다 못해 이상했다. 대체 어디서 나의 브런치 북이 노출되었길래 자꾸 사람들이 방문하는지 궁금했다. 휴대폰 바탕화면에서 알람을 온종일 지우기만 하다가 브런치 앱에 직접 들어가 보았다. 브런치 앱 첫 화면을 확인하곤 뇌의 일시정지가 왔다.


첫 메인화면에 '병원의 일상이 글이 되는 곳' 브런치 북이 추천도서로 걸려있었다. 이 덕분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내 브런치로 유입이 되었고, 그동안 발행했던 글들의 조회수가 늘어난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브런치 메인화면에 등장하는 브런치 북은 남의 얘기였다. 글을 꽤나 잘 쓰시는 분들만 메인화면에 등장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끔 들어가 보면 이미 구독자 분들도 많으시고 여러 권의 책을 내신 분들도 계셨다. 그래서 브런치 메인에 내 글이 걸린다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약간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한번 더 그간 썼던 글들을 읽어봤다. 혹시나 실언한 건 없는지, 앞뒤가 어색한 내용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이미 브런치 북을 내기 전 몇 번의 퇴고를 거쳤지만 여전히 어설퍼 보이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리고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댓글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몇 문장의 짧은 댓글이었지만 힘과 위로가 되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꾸준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글을 써온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자기 전 집에서, 병원의 당직실에서,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는 어느덧 130여 개의 글이 축적되었고, 옮겨간 브런치에도 4개의 매거진과 1개의 브런치 북이 생성되어 있었다. 분명 그간 글쓰기가 재미없고, 글의 소재가 없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기분과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의 루틴처럼 한 달에 몇 편씩 글을 썼다. 글의 소재가 없다고 느낀 날엔 읽던 책의 독후감을 썼고, 글쓰기에 흥미를 못 느끼는 날엔 전공 공부 기록을 글로 남겼다. 쓰다 보니 또 쓰게 되는 것이 글이었다. 하나의 글쓰기 소재가 또 다른 소재와 영감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독자들에게 지식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지속적으로 신선한 소재를 던져주었다.


오늘의 반복적인 브런치 알람은 병원에서의 휴대폰 알람과 달랐다. 이런 알람이라면 소리와 진동을 켜놓고 환영이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어쩌다 맞이한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는 이런 하루 덕분에 글쓰기의 꾸준함은 오늘도 on and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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