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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Oct 18. 2022

4. 수술방 CCTV는 필요할까?

'수술방 CCTV를 설치해야 하는가.' 최근 사회면 뉴스를 장식한 핫이슈 중 하나였다. 수술방 성폭행, 수술방 과다 출혈, 사망 등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기사들은 의료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더욱 화제가 되었다. 찬성과 반대로 편이 갈리고, 무분별하게 서로를 비방하는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정부와 의료계가 해결해야 할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다.

수술과 수술방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안다면, 언젠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이 주제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지닐지도 모른다.

먼저 대학병원의 수술은 전신 마취를 하는 경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단순 급성 충수염처럼 간단한 수술이라면 수술 자체에만 걸리는 시간은 20분도 안 걸린다. 하지만 환자가 수술방에 입실하여 환자 확인 후 마취, 수술 자세를 잡고, 수술 부위 소독, 수술 종료 후 드레싱, 환자 깨우기, 의식 확인 후 회복실로 이동 후 퇴실. 이 모든 과정을 합치면 1-2시간이 소요된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이다.

하지만 수술 외의 준비 과정과 마무리 과정은 수술만큼이나 중요하다.

1. 환자 확인

-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부터 확인을 한다. 환자 이름과 등록 번호는 무엇이며, 어떤 부위에 어떤 수술을 할 예정인지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수술 부위에 표시(Marking)가 되어있는지도 확인한다. 수술 부위 표시가 없으면 주치의가 수술방 입구까지 내려와 다시 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성가신 과정이 꼭 필요한 이유는, 올바른 사람에게 올바른 수술을 하기 위함이다. 수술 전 긴장한 환자분이 반복되는 확인에 짜증이 날 정도가 되면 마취를 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어쩌다 한 번씩 부러진 팔 대신 반대쪽 멀쩡한 팔을 수술했다는 허무맹랑한 기사도 올라온다.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의료 사고들이다. 이런 참사를 방지하려면 성가신 환자 확인은 필수이다.

2. 마취 및 라인 확보

- 마취과 의사의 영역이다. 마취 방법은 수술 부위 및 수술 예상 시간에 따라 마취과에서 결정한다. 대개 전신 가스 마취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선 척추 마취, 정맥 마취 등 여러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전신 가스 마취 시엔,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기 위해 기도삽관을 한다. 그리고 수술 중 모니터링 및 약물 투여를 위해 목이나 팔, 다리에 주사 바늘을 꽂는다. 혈관 확보가 어려운 소아나 old age의 환자들은 이 과정이 1시간 이상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좌) 중심정맥관 삽입/ 우) 기도 삽관


3. 수술 자세 및 수술 부위 소독

- 수술에 따라 다양한 자세가 요구된다. 어느 쪽 장기를 수술하느냐에 따라 좌우 한쪽 팔을 몸 옆으로 빼야 하고, 비뇨기나 항문 쪽 수술은 두 다리를 올리는 lithotomy position을 취해야 한다. 수술 도중 환자가 누은 테이블을 기울여야 할 때도 있다. 환자가 떨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자세를 잡은 후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해야 한다. 소독도 여러 번, 오래 해야 한다. 수술 도중 균 감염을 막기 위해 수술 범위보다 더 넓은 부위를 소독한다. 그리고 소독액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르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소독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 사이트를 제외한 부위를 멸균 포로 덮는다. 이 과정을 드랩(Drape)이라고 한다. 드랩을 하고 나면 수술 부위 외엔 환자의 다른 신체가 보이지 않는다.

수술 부위 외엔 환자의 신체가 보이지 않는다.
4. 수술

- 배를 여는 것부터 배를 닫는 데까지 포함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수술 종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은 수술은 이 과정이 30분 이내로 이뤄질 때도 있지만, 길어지는 경우 7-8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실제로 내가 본 가장 길었던 수술은 아침 8시 첫 수술로 들어가 저녁 8시 반이 되어야 환자가 나온 수술도 있었다. 아침에 수술장에서 여러 번 내쉬던 교수님의 한숨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5. 수술 후 환자 깨우기

- 의외로 깨우는 과정이 복병이다. 마취과에선 수술이 끝나는 시간을 대략 예측해 수술 마무리 시점에는 조금씩 환자를 깨운다. 하지만 깨우는 약을 투약하고 가스를 끊어도 정말 안 깨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 중에 사용했던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가 호흡과 의식을 확인해야 퇴실할 수 있다. 애기들의 경우 깨는 과정이 훨씬 더 오레 걸린다. 30분-1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금방 깬 다음 난리를 치시는 분들도 있다.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괴력을 행사하시는 분들이다. 3-4명이서 환자를 붙들고 겨우겨우 회복실로 이동시킨다.

6. 회복실 입실

- 회복실에서는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환자를 모니터링한다. 간혹 의식을 찾고 수술방을 나가도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시 호흡을 힘들어하는 경우엔 응급 기도삽관이 필요하다. 환자 상태가 충분히 안정된 후 병실로 퇴실한다.

수술 후 잠깐 거치는 회복실.


환자 입실부터 퇴실까지 총 6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세부적인 여러 과정들이 더 존재한다. 타 로컬 병원은 모르겠지만, 대학 병원의 이런 시스템 하에선 수술 외적인 일들은 발생하기 어렵다. 환자 입실부터 퇴실까지 수술방에 있는 사람들은 마냥 일하기 바쁘다. 차가운 수술방에서 땀나도록 일한다.(수술 중 환자의 조직에서 산소 요구도를 낮추기 위해 수술방 온도는 대개 20도 전후이다.) 수술이 늦어지고, 환자 입퇴실이 지연될수록 수술방 속 사람들 6-8명의 피로도도 높아진다. 하루하루 꽉 찬 수술 스케줄 상에서 예정된 수술 말고 의도적으로 꼼지락거리는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한 대학 병원 수술방에서의 딴 짓은 없었다.




수술방 CCTV는 전 국민의 80%가 찬성한다고 한다. 환자의 자기 권리 보호 영역이 가장 큰 이유이다. 보호자는 수술방에 출입할 수 없고, 환자는 마취 후에 기억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인들에게 의료 사고 시 정보의 비대칭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료 기록을 녹화하여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이 동등하고, 또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도 CCTV가 있듯, '문제 있는 행위가 없을 것이라면 수술방에도 설치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주장이 찬성 측 의견이다.

CCTV를 반대하는 이유도 여러 근거가 있었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 의료인들의 피로도 누적, 전공의 수련 불가, 응급 상황의 소극적인 대처 가능성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중 가장 큰 이유는 의료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한다는 이유였다. CCTV는 보통 우범지역에 많이 설치되고, CCTV의 재생은 문제가 생겼을 때 돌려보는 조사 및 수사의 영역이다. 이런 상징성을 지닌 CCTV 가 수술방에 들어온 다는 것은 또 다른 우범지역이 수술방이라는 인식을 준다. 수술방에서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본인의 일터가 우범지역이라면 과연 그 직업은 존중받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들었다.

'수술방 CCTV 의무화'는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꾸준한 잡음을 일으킬 것이다. 찬성과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엔 워낙 민감하고 어려운 사안이다. 글을 쓰며 찾아본 결과 양측 모두 합당한 이유들이 너무나 많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져야 할 의료진과 환자 관계가, 서로가 서로로부터 방어해야 하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점이었다. 어디서부터 의료인과 비의료인의 갈등이 시작된 건지,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여전히 어려웠고, 알 수 없었다.

사람은 태어나 탯줄을 자를 때부터 의료인의 손을 거친다. 그리고 의학에 소아과가 존재하고, 이제 노인 의학이 생길 만큼 생애 전반에 걸쳐 의료인과 접점이 있다. 접점마다 환자와 의료인이 적으로 마주하기보다는 동맹관계로 마주하기를 고대하며, 오랜만에 '알아두면 좋은 병원 상식' 한편.


알아두면 좋은 병원 상식 시리즈는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communication quality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병원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만 병원 밖 사람들에게는 낯선 병원 상식을 연재합니다. 또 다른 궁금증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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