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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isbumpy Mar 11. 2022

만약 IT 제품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면,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노인을 위한 제품 설명서가 필요합니다. 지금보다 더 간단한 설명과 글씨는 더욱 큼지막해야 해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세상 가장 위대한 남자 우리 할아버지. 여든이 훌쩍 넘은 연세에 세상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늘 배우려는 자세로 손주 그리고 자식들에게 용기 내어 다가가는 사람. 세상 사람들 모두가 편하게 사용하는 IT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창피함에 자존심을 내세우며, ‘늙은이는 그런 거 안 배워도 된다.’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런 내색 없이 늘 배움의 자세로 새로운 것을 대한다. 자신이 모르거나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 늘 당당하게 인정하고, 개선하려 노력하는 그를 볼 때마다 내가 그의 손자라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다.




할아버지는  변화에 민감했다. 학창 시절, “고등학생 때였었나?..”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가 페이스북을 시작하셨고, 그는 내게 친구 요청을 했다. 오묘한 기분. 그가 나의 피드에 게시글을 남기고 댓글을 남기는 것이 불편했다. 비밀 아지트이자 놀이터가 들통난 기분. 집안 어른이 지켜보는 듯한 막연한 불편함이라고 해야 할까? 2병에서 아직 깨어 나오지 못했던 탓인지, 다른 할아버지들과 다르게 SNS 하는 할아버지가 불편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인데, 나의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 놀기 위해 연습하는 그가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움직임은 매 순간 자랑스러움의 대상이었고, '페이스북'하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변화에 늘 유연하게 대응하는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늘 내게 울림을 준다.



블루투스 이어폰 선물 받았다고 신나서 사용방법을 물어보고, 테스트해보는 우리 할아버지.


‘… 할아버지도 저렇게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 할아버지,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손주가 다 알려줄게.”



하지만, 시간은 붙잡을  없다. 그가 배울  있는 속도보다 기술은 월등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기존에 IT제품의 인터페이스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이라면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답답하다. 세상을 조금  편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기술이 누군가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르신들이 습득하기에 어려운 현대 기술. 정작 모두를 편하게 하려는 기술이 이해도에 따라 계층을 만들어 노인의 자리를 점점 줄어들게 하는  아닐까 걱정이다.



“어디 좋은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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