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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isbumpy Apr 22. 2022

일기는 왜 쓰기 어려운 걸까?

완벽주의자의 실패 일기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 보자.


방학하는 날이면,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기 보다는 목청껏 소리 지르면서 "와! 방학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순간은 지금 생각해봐도 설레는 일이다. 방학을 알리는 학기의 마지막 종례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는 일분일초라도 학교로부터 해방을 빠르게 시켜주는 분이 계신 반면, 정석대로 또는 오래도록 종례를 끄는 분이 계셨다. 종례를 느리게 끝내주는 선생님이 담임일 때면, 어찌나 답답한지 목 끝까지 집에 보내달라는 말이 차올랐다. 그 순간의 답답함을 생각하자면 지금도 고구마를 한가득 목구멍으로 집어넣은 듯하다.


방학은 모두가 기다리는 순간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지 않아도 되며, 친구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을 차며 운동장을 뛰어놀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싫어하던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방학 숙제, 그중에서도 '일기'는 최악의 숙제였다. 방학이 60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마 그중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한 모든 날의 기록은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랜만에 엄마 집에 놀러 와 초등학생 시절의 일기를 찾아보니, 빠르게 지난날의 기록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글씨는 춤추는 꼬부랑이 모양이다. 선생님이 이 일기장을 모두 들여다보셨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한 가지 뿌듯한 사실은, 어린 시절 나는 어떻게든 60일의 기록을 채워냈다는 것이다. 모른 척 안 하고 내빼도 됐을 터인데 말이다. 아마 지금 누군가 내게 똑같이 일기를 쓰라고 숙제를 내준다면... 지금도 나는 허구의 이야기를 중간중간 풀어낼게 뻔하다.



"일기는 왜 이렇게 쓰기 어려운 걸까..?"


성인이 된 지금도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 매년 계획을 하고, 플래너를 사고, 꽤 멋지고 단단해 보이는 표지의 일기장을 구매하여 하루를 기록하려 한다. 누군가가 지시한 숙제가 아닌, 온전한 나의 하루를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자 현재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는 연습장이자 미래의 잘 자란 내가 뒤돌아봤을 때 "음~ 꽤나 잘 살았구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근데 말이지, 일기는 너무 어렵다.


아마 일기가 어려운 이유는 매일매일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순간은  기록으로 남겨야만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분명 사진이나 글로 어떻게든 기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일상은 매번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그곳에서 신선함과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은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그날의 감정, 만난 사람, 기억에 남는 대화  간단한 사건과 감정선을 기록하는 것으로 괜찮은 일기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 나의 일기는 생산적이고, 자기 계발적이고, 미래를 그리는 희망차고 완벽한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분명, 욕심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 일기는 세상에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이상 일기라고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일기라기보다는 작품이라고 불려야 맞지 않을까?"


개인의 일상과 감정의 기록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일기인데, 책상에 앉아 펜을 들 때면, 조금이라도 더 풍부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찾아오곤 한다. 완벽했으면 하는 마음이 찾아와 일기장을 열어보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완벽하다는 것은 매력도 없고, 재미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고 앉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일기뿐만 아니라, 현재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만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 완벽주의가 가져오는 피로감에 압도되기도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하나 필요한 요소를 생각하고 추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높은 산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오르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이렇게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한참을 고민한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무력감에 압도되지 않고, 뭐라도 해볼 수 있을까..? 나에겐 시작의 기술이 필요하다.'



고민 끝에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부족해지기로 했다."


"부족한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부족하지만, 솔직담백한 그런 일기를 기록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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