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그리고 쓰임
한낮의 온도가 31도 가까이 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6월인데, 벌써 여름을 느낀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가장 좋은 곳에 앉아 있다. 집 앞 카페에 앉아, 나처럼 더위를 피해 카페에 들어온 사람들을 마주한다. 모두 하나같이 차가운 얼음이 든 음료를 주문한다. 에어컨의 바람이 무색하게 사람들의 얼굴은 선홍빛으로 더위를 숨기지 못한다. 나 역시 또르르 얼굴 옆으로 땀을 한 두 방울 흘린다. 무지하게 덥구나 오늘.
오늘도 어김없이 '얼음이 듬뿍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눈 코 뜰 새 없이 커피를 호로록 마신다. 차갑고 쌉쌀한 게 입속의 열대야를 거짓말처럼 식혀준다. 역시 무더운 여름엔 쌉쌀하고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가장 맛있다. 달콤한 음료나 따뜻한 차도 좋지만, 유독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다. 무언가 입속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것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입안으로 넣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입 속의 쾌쾌한 향기를 모두 씻어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이스..
지금, 가만히 앉아 내 옆에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 아니, 그 속에 담긴 얼음의 아우성을 느낀다. 천천히 커피와 동화되며 녹아내리는 얼음. 자신이 녹아 사라지는지도 모르고, 커피와 그렇게 한 몸이 되어가는 얼음. 이를 가만히 쳐다보니 문득,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로 태어나 얼음이 되기 위해 각 잡힌 틀에 들어간다. 춥고 추운 냉동실로 들어간다. 얼음이 되기 위해 장장 3~4시간의 추위를 견뎌야만 한다. 아니, 추위 그 자체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숨죽이고, 오랜 시간을 버텨 얼음이 된다. 얼음이 되면, 사람들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또는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해 시원한 음료나 음식에 퐁당 뛰어든다. 그리고 좁디좁은 얼음곽에서 버티고 버텨 노력한 3~4시간이 무색하게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녹아버린다. 열심히 얼음이 되기 위해 그 춥고 좁은 냉동고 속 얼음곽에서 버텼지만, 정작 쓰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 이것을 슬프다고 해야 할까?..."
우리 사람도 무엇인가 되기 위해 짧고도 긴 시간을 공부하고, 집중하고, 노력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틀에 들어가 열심히 숨죽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 기간 동안 잘 버텨냈다면, 좋은 결과를 마주한다. 무엇인가 되는 것이다. 비록,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얼음이 되는 방법을 안다던지, 얼음 비슷한 살얼음이 된다던지, 냉동고 속의 구조를 알게 되어 더 좋은 냉동고를 개발할지도 모른다. 결코, 얼음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스스로를 무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얼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얼음이 되었다면 그 쓰임이 노력에 비해 미미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에겐 늘 노력과 쓰임은 그랬으니 말이다.
어딘가에 쓰임이 된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쓰임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소중한 것은 과거의 노력이다. 떠올려보면, 그때의 땀방울과 열정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멀리서 지켜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것은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름다운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순간의 난 힘든 것도 몰랐다. 얼음이 되기 위해 마냥 버티고 버텨 하루하루를 열심히 나아갔다. 마침내 얼음이 되었고, 얼음이 된 노력과 시간에 비해 쓰임 받은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젠, 얼음이 되는 방법을 알았고, 냉동고의 구조를 알았으니.
우리는 얼음이 되기 위해 수만 시간을 노력한다.
막상 얼음이 되면, 금방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얼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무더운 여름의 나의 입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준 얼음을 기억하듯이 누군가는 나를 꽤 괜찮은 얼음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나를 꽤 괜찮은 얼음이었다고 기억할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누군가 얼음이 되기 위해 춥고 어두운 냉동고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나는 멀리서나마 그가 조금이나마 따뜻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
"얼음..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