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를 맞는 방법.
비가 온다. 비 소식이 없었기에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이대로 집까지 걸어간다면, 온몸이 다 젖을게 분명하다. 뭐, 상관없다. 집 가서 따뜻한 물로 씻어내면 되니, 오랜만에 시원한 비를 그대로 맞으며 집으로 향한다.
호주에 가기 전, 나는 꽤 깍쟁이였다. 더러운 바닥에 앉거나, 풀밭에 앉는 행위를 꺼려했다. 비를 맞는다면, 옷이 젖는 것과 더불어 머리가 빠질 것 같은 싫은 느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만난 내 친구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듯 비를 맞으며 걸었다. 솔직히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왜 굳이,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걸까? 우산이 있고, 왜 굳이 가랑비를 맞으며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걸까? 찝찝하지는 않을까?”
사회적인 동물인 나는 그들을 따라 비를 맞았다. 아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산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를 맞기 전까지만 해도 가랑비에 몸이 젖는 것이 두려웠다. 비에 젖으면 다음에 일어날 찝찝한 느낌과 몸이 젖는 걸 상상하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들처럼 비를 맞으며 걸어보니, 비를 맞기 전까지 들었던 모든 두려움은 허상이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몸이 젖는다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고, 더 큰 비바람이 몰려오는 것에 몸이 젖을까 두렵지 않았다. 가랑비를 맞기 전까지 갖고 있던 망설임은 나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후로부터 나는 비를 곧 잘 맞는다. 비를 맞으면, 몸이 젖고 머리가 망가진다. 하지만, 비를 맞으면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비 맞을 걱정이 사라지니, 본질을 바라보기 한결 수월하다. 가랑비를 맞다 보면 어느새 몸이 모두 축축이 젖어버릴지도 모르지만, 비 맞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비가 그치기 전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며,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당차게 비를 맞으며 걸어 나간다면, 우리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랑비를 맞을 줄 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폭풍우가 몰려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과정과 같을지 모르겠다.
비를 맞자. 시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