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열 달, 추억을 떠나보내는 기분일까

[육아해우소(8)]

by 스트로베리


# 배냇머리 깎는 날


태어나서 머리카락이 까맣고 숱이 제법 많던 하빈이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카락이 점점 많이 빠지기 시작했고 빈 곳들이 숭숭 보였다. 백일을 기점으로 나와 하빈이 머리카락이 같이 빠지기 시작했다.

요즘엔 배냇머리를 옛날처럼 깎지 않고 계속 기르기도 한다고 해서 그냥 두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머리카락이 남아나질 않을 거 같아 깔끔하게 한번 깎기로 했다. 120일쯤 백일사진을 찍고 그다음 주 주말에 바로 미용실 예약. 남편이 먼저 펌을 하고 하빈 이를 데리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잘 놀던 하빈이. 자기 차례가 다가오니 졸려하기 시작했다. 앗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남편 펌 중화전 급하게 하빈이 머리카락을 밀게 되었다. 귀여운 컷트보를 두르고 아빠 품에 안겨서 조심조심 원장님이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난 옆에서 딸랑이로 재롱을 부렸지. 그래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끝까지 잘했다.

배냇머리 깎는 모습, 머리카락이 온몸에 붙어 목욕할 준비중^^

배냇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버린 빡빡이 하빈이.

내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함께하면서 길었던 머리카락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쉽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을 떠나보내는 기분이랄까. 탯줄이 떨어져 나갈 땐 내가 산후조리 중이라 힘들어서 못 느꼈던 그런 감정을 느꼈다.

연인을 떠나보내는 기분인가. 이별하는 기분인가.

이렇게 우리가 함께했던 열 달의 머리카락과의 이별은 하빈이가 세상과 적응 중이란 말과도 같을 것이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처음 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이 더 많이 생기겠지. 이 하나하나를 같이 몸으로 마음으로 같이 느끼며 우리는 같이 성장해나 갈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살기 바빴던 그 상황 속에서도 나와 동생을 키우며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남편이 매일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너 원하는 대로 할 거야.”

뼈 때리는 조언이 특기인 남편이지만,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어주고 지지해 준다. 그래서 내 20대 그리고 30대의 길잡이가 된 사람이다.

나도 하빈이에게 길잡이가 되고 싶다.
내가 어딘가로 열심히 가고 있으면 그것을 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말이다.

‘내가 정해준 길을 가라’가 아니라 나와 남편이 열심히 가고 있으면 그걸 보고 ‘아, 나도 저런 식으로 나의 길을 가면 되겠구나’ 생각을 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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