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해우소(18)]
하빈이가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한국에는 언젠가 들어가야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사관에서 출생신고는 했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부여받으려면 한국에 들어가야만 했다.
엄마와 동생만 하빈이를 봤고 나머지 가족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빈이 돌 전에는 들어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한 달 한국행을 결정하고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건 참 쉬운 일이었다는 게 짐을 싸면서 느껴졌다. 하빈이 짐만 20킬로가 되었고, 난 진짜 운동화 한 켤레만 챙기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새벽 1시 비행기였고,
하빈이가 잘 시간이었지만 불편해서 깨면 어쩌나
울면 어떻게 해야 하지. 깨서 갑자기 분유 달라고 하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밀려들었다.
메이드언니가 걱정 많은 내가 또 걱정하는 게 눈에 보였는지 가는 날 오전 자기가 나서서 짐을 다 챙겨주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짐도 못 쌀뻔했지.
시간은 흘러 비행시간 3시간 전.
하빈이는 루틴대로 저녁 7시에 잠들었고 자는 걸 깨워 아기띠를 매고 남편과 공항으로 갔다.
공항의 밝은 불빛과 소음 때문에 호기심 많은 하빈이가 눈을 뜨고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있어서 옆자리를 비워주었고 남편과 인사를 하고 출국심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아기띠를 매고 있으니 직원들이 나를 불러 편의를 봐줬다.
그런 덕분에 출국심사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하빈이는 자다 일어나서 어딘지 신기해서 둘러보기 바빴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아기띠에서 잠들지는 않았다. 앞선 비행기가 지연되면서 더 기다렸는데 앉아서 둘이서 신나게 놀았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한국분이 “아기가 안자네~ 똘망똘망 안 잘 거야?”라며 하빈이에게 말 걸었다.
자리는 비상구 뒷좌석.
창가 쪽에 앉고 중간자리에 짐을 놔두었다.
복도 쪽에는 한국인 중년남성분이 타셨는데, 나랑 하빈이가 앉으니 밤비행기인데 못 잘까 봐 동료분에게 말하며 걱정인 눈치셨다. 그 말을 듣고 난 긴장이 되었고 하빈이도 내가 자리 잡을 동안 살짝 찡얼거렸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이륙한다고 불이 꺼지자마자 하빈이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다. 그제야 나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빈이는 내가 자세가 불편해서 고칠 때만 잉~거리고, 기내식이 나오고 불이 켜지고 시끄러워도 세상모르고 잘 잤다. 덕분에 나도 옆자리 한국분도 같이 잘 잤다. 내 허리와 팔이 아팠지만 무사히 조용히 온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드디어 착륙하는 알림이 나오고, 내릴 준비를 하느라 내가 부스럭거리니 하빈이가 깼다. 울지도 않고 나랑 장난치고 옆자리에 할머니랑도 인사하고 뒷자리 할아버지랑도 인사하다 보니 착륙! 나는 분주하게 아기띠를 매고 분유가방을 챙겼고 하빈이와 한국땅을 밟게 되었다.
입국장에서 또 눈을 뜨고 여기저기 돌아보는 하빈이를 보고, 아기가 또 안자네~~ 하고 아까 만났던 분이웃으며 인사했다.
두근두근 하빈이와의 첫 비행. 첫 한국행.
이제 앞으로 몇 년. 몇 번이나 비행기를 더 타야 할지 모르지만 항상 긴장되고 걱정될듯하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나로 인해 적응해야 한다. 항상 같은 환경, 정해진 루틴대로 살 수 없다.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하지만, 아직은 힘든 엄마인 나. 체력과 정신력이 더 필요하다.
베트남에서 편하게 살았던 것 같고, 하빈이한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다. 그래도 가족들 친척들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하며 행복해하고 한 뼘 더 큰 하빈이.
하빈이를 보면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 육아고수 외할아버지.
힘들 텐데 내 밥 챙기랴 집안일하랴 힘든 외할머니.
일하면서 하빈이랑 나 케어하느라 고생인 이모랑 예비 이모부.
하빈이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베트남에서 일하느라 고생하는 아빠.
찡찡거리는 초보엄마 서포트 하느라
고생많은 모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