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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기 Feb 12. 2019

동물행동학 입문기

길앞잡이 행동 연구

길을 안내해 주는 모습과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
길앞잡이

현재는 많은 분들이 내가 양서파충류와 매미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가장 연구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길앞잡이였다. 길앞잡이의 행동에 관해서 연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장이권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때도 길앞잡이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다른 실험실은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가 소속된 실험실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국가 또는 기관에서 지원해주는 연구과제 안에서 맞는 연구를 하거나 지도 교수님께서 정해주는 연구를 한다. 나는 길앞잡이를 하고 싶었으나 이화여대 행동 생태 실험실에서는 주로 매미와 양서파충류를 연구하기 때문에 길앞잡이를 연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했다.


나는 당시에 운이 좋았다. 물론 물질적인 지원은 없었으나 길앞잡이를 연구하기에 앞서 동물행동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분이 존재했다. 현재 목포대학교에 교수로 계신 강창구 박사님께서는 당시 우리 실험실에 계실 때 잠시 동안 못다 한 연구를 위해 캐나다에서 오셔서 실험실에 계셨다. 강창구 박사님께서는 Carleto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소속되어 계셨지만 전에는 이화여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지내셨다. 박사님께서는 실험실에 계시는 동안 동물행동학 책도 빌려주시고 무엇보다 길앞잡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실험 방법들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 연구주제는 비교적 간단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알려진 이론들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길앞잡이 (Cicindela chinensis)는 화려한 색을 갖고 있다. 그 반면에 다른 길앞잡이들은 서식지의 배경과 비슷한 색을 띠고 있다. 나는 길을 안내해준다고 해서 붙여진 길앞잡이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가설을 세웠다. 길앞잡이가 길을 안내해주는 것과 같은 행동은 적이 가까이 다가가면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날아서 앉는다. 이 점을 생각해봤을 때 화려한 길앞잡이 적에게 눈에 띄기 쉽기 때문에 일찍 반응하고 멀리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길앞잡이는 적에게 눈에 띄기 어렵기 때문에 화려한 길앞잡이에 비해 늦게 반응하고 덜 멀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왼쪽 화려한 색깔의 길앞잡이 (Cicindela chinensis), 오른쪽 서식지와 색깔이 비슷한 강변길앞잡이 (Cicindela  laetescripta)

나는 처음에 길앞잡이 (C. chinensis)와 아이누 길앞잡이 (Cicindela gemmata) 두 종을 비교하였다. 길앞잡이를 찾으러 나설 때 사비를 사용했고 실험 도구들도 사비로 사야 했기에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비들로 연구할 수 있게 실험방법을 만들었다. 포충망과 나무젓가락, 어두운 색의 옷을 준비하였다. 나머지 거리 측정 기계와 온습도계는 실험실에 있기에 구매하지 않았다. 옷은 항상 같은 계열의 색으로 맞춰서 입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길앞잡이의 눈에 다른 색이 보이게 되면 어떤 적으로 인식할지 아니면 그냥 방해물로 볼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길앞잡이 눈에 대해 기능적으로 더 자세히 알고 실험을 하려 하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같은 계열의 옷을 착용함으로써 필요한 부분을 채웠다.


주로 야외에 나가서 실험을 하였다. 온습도를 측정하고 길앞잡이를 볼 경우 길앞잡이가 나와 같은 방향을 볼 때에만 실험을 하였다. 천천히 다가가 도망가게 되면 재빨리 포충망을 들고 내 발쪽 젓가락 하나, 길앞잡이가 있던 곳에 젓가락 하나 그리고 날아가 앉은 곳에 젓가락 하나를 꽂았다. 그리고 다른 길앞잡이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채집을 하였다. 나는 내 발과 반응하기 전에 있던 곳에 길이를 재고 또 반응하기 전에 있던 곳과 반응한 후에 있던 곳에 길을 재어 두 종에 대해 비교하였다. 결과는 예상한 바와 같이 화려한 길앞잡이는 더 빨리 반응하고 멀리 갔으며 서식지 색깔과 비슷한 길앞잡이는 더 늦게 반응하고 덜 멀리 도망갔다.

아이누길앞잡이와 길앞잡이의 반응 거리와 도망 거리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야외에 나가 데이터들을 정리해놓은 노트

실험은 완벽해 보였지만 문제는 화려한 길앞잡이는 왜 화려 한 지와 그리고 정말로 천적에게 눈에 잘 띄는지에 대해 증명을 해야 했다. 붉은색이나 화려한 색들은 대부분 Aposematic color (경고 색)인 경우가 많고 서식지와 비슷한 색을 가진 경우 Cryptic color (위장색)인 경우가 많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강창구 박사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몇 초 안에 찾아내는지 측정해서 차이를 보면 되는 것이었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와 같다.


실제로 아이누 길앞잡이와 길앞잡이는 서식지가 많이 겹친다. 그래서 더 두드러지게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예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길앞잡이 연구는 여러 이유로 인해 중단되었다.

왼쪽 아이누길앞잡이 오른쪽 길앞잡이

한 해에 실험이 끝난 뒤 나는 Lab meeting 때 발표를 해야 했다. 실험실에서는 한 주에 한 번 Lab meeting이 있다. 이화여대 행동 생태 실험실에서는 한 명이 연구하고 있는 것이나 연구할 것에 대해 발표하고 질문을 받고 조언을 받는다. 그 후 각자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예정인지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Lab meeting 때 한국어로 말해야 되는지 아니면 영어로 말해야 되는지부터 혼란스러웠다. 당시 사실은 한국어로 말해로 크게 상관은 없었으나 Amael이 무조건 영어로 발표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발표를 하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특히 교수님께서 쓴소리를 들었다.


발표가 끝난 후 나는 교수님의 방으로 갔다.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오늘 발표는 학부생 수준이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는 교수님께 "저 아직 학부생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 당황하셨는지 학부생인 것은 알지만 우리 실험실에 있으면 더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장이권 교수님처럼 좋은 교수님은 좀처럼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실험실에 있는 교수님 특히 논문을 검토하시거나 발표에 대해 평가하실 때는 그 누구보다 차갑고 냉정하게 말씀하신다.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도움이 된다. 틀린 것을 올바르게 잡아주시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도 논문 또는 보고서 검사를 받을 때 교수님 방 앞에서 망설일 때도 있다.

2016년 12월 01일 3번 만의 성공한 발표

길앞잡이 연구는 추가적으로 화려한 색을 가진 다른 종의 길앞잡이의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현재 1종의 길앞잡이만이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가 기회가 온다면 이어서 하고 싶다. 그리고 늘 실험에 100% 성공은 없다. 정말 수없이 많이 실패하기도 하였고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실험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로망이었던 길앞잡이 언제가 다시 연구할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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