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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기 Jul 14. 2019

볕이 과랑과랑한 비자림로 쉬영갑서

비자림로에 창원한 이야기

빠밤 빠밤~ 팔색조의 소리
보이지 않는 긴꼬리딱새들의 날갯짓 소리
볕이 과랑과랑한 비자림로에 쉬영갑서

20대에 제주도를 매 년 약 10번씩 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어쩌면 가장 행복한 20대 생활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구를 위해서 제주도를 지키고 알리고자 최근에 자주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정말 멋진 곳들이 많지만 세계 최고인 곳은 누가 뭐라 해도 제주도일 것이다. 화산섬이며 검고 구멍이 송송 나있는 돌들로 이루어진 제주도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 설레는 곳이다. 나는 제주도를 자주 가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섬이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제2 공항을 짓고 또 도로 확장을 위해 비자림로에 있는 삼나무를 베고 도로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누가나 들었을 것다. 4월 달에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제주에 갔다가 비자림로에 안타까운 장면들을 보았다. 제주에 올 때마다 지나다녔던 길 중 하나였는데 나무들이 베어진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에서 산림을 파괴하고 하는 개발은 우리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날 것이다. 베어진 나무들도 잃어가는 숲들도 습지들도 모두 지켜낼 수가 없다. 4대 강 사업, 가리왕산, 서울의 수원청개구리 등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저 지나쳐가는 슬픈 현실이겠지 했다.


이화여대 행동생태 실험실에 내 보스는 장이권 교수님이시지만 빅보스 이신 최재천 교수님께서 대표로 계신 생명다양성재단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비자림로를 조사하러 가게 되었다. 제주에서 다른 일정이 있어서 제주로 향했지만 일정을 조금 더 추가하여 비자림로를 조사하러 가게 되었다. 제주 비자림로에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 년 동안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식물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멸종위기 종은 발견하지도 못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여러 전문가들이 와서 비자림로를 조사했을 때 많은 멸종위기 종들, 천연기념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두 달 사이에 다른 전문가들은 발견하였는데 어째서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못 발견한 것인가? 식물 전공자들이 조사했다고 하는데 식물도 제주 서식하지 않는 식물들이 평가보고서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누가 들어도 부실조사가 확실했다.


나는 약 3일간 비자림로를 조사하였다. 시간과 돈이 없기에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충분한 시간과 돈이 있다면 곤충들을 유인할 트랩들을 각 구간 별로 설치하고 어떤 종이 있는지 조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곤충은 전문가가 부족했다. 우리나라에는 약 15,000 종에 곤충이 서식한다. 오름 정도 크기에 작은 산을 조사해도 약 200 종 이상의 곤충이 발견된다. 그러나 약 50 종의 곤충만 발견했다는 것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름에 하루만 조사해도 비자림로에서 100종의 곤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동정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멸종위기 종과 제주에서만 서식하는 제주 고유종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보았다. 삼나무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베어진 삼나무 뒤에는 너무나 울창한 숲이 그리고 초지가 내 앞에 보였다.

2019년 07월 05일 비자림로에 베어진 삼나무 뒤

밤에도 조사는 계속되었다. 바나나도 설치하고 빛도 이용해보았다. 물론 돈이 없어서 제대로 된 등화 장비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처럼 유인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밤에 모기에 뜯기며 뚜벅이로 조사하였다. 밤에 돌아다닌기 전, 낮에 참나무 숲이 있는 것도 확인했고 참넓적사슴벌레가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나는 두점박이사슴벌레가 이곳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을 100% 확신하였다. 다만 날씨가 문제였는데 날씨도 너무 좋아서 공사 구간 초입에서부터 두점박이사슴벌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특히 같이 조사 온 다미 누나와 유철이가 찾은 대형 수컷 두점박이사슴벌레는 나도 처음 보는 초대형 수컷 두점박이사슴벌레였다.

2019년 07월 04일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찾은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두점박이사슴벌레

같이 온 세계일보 기자님 그리고 조사하는 동안 도와주신 분들도 이 멋진 곤충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 찍느라 바빴다. 그러나 비자림로에 가치가 멸종위기 종들로만 보여 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멸종위기 종 그리고 천연기념물에만 왜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키려 하는지 이해는 되지만 다른 중요한 것을 너무 많이 지나쳐간다. 비자림로에서 조사하는 동안 제주도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인 제주풍뎅이, 제주홍단딱정벌레, 제주멋쟁이딱정벌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 많이 서식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제주도에서만 서식하는 곤충들이다. 왜 이러한 종들은 제주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건가? 이러한 사실들이 안타깝다. 실제로 위에 고유종 3 종은 환경영향평가에서 빠져있었다.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두점박이사슴벌레는 현재 복원 사업 중이다. 개체수를 늘리면 뭐하나 이 녀석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서식지를 파괴하고 복원하려 한다. 가만히 놔두는 것이 최고의 복원 사업이다. 도로를 만들고 가로등을 설치하면 많은 두점박이사슴벌레들이 불빛에 날아와 차에 깔려 죽을 것이다. 가로등을 설치 안 하다고 해도 밤에 빛을 가려주던 삼나무가 없어졌으니 로드킬로 죽는 개체들이 늘어날 것이다. 날이 좋은 날, 야간 조사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조사하는 기간 내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조사를 갔다. 곤충도 양서파충류도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기록했기에 나도 팔색조와 긴꼬리딱새를 찾아서 나서고 싶었지만 비바리뱀을 찾기 위해 조류 조사팀과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제주에 있는 일주일 동안 비바리뱀을 찾아다녔지만 이곳에서도 찾지 못했다. 집에 가는 날 비바리뱀을 못 찾고 가는 건가 했는데 조사 후 인근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길에서 비바리뱀 사체를 찾았다. 멸종위기 1급 보호종인 비바리뱀이 로드킬로 비자림로 인근 마을에서 발견된 것은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도 서식한다라는 근거가 되는 중요한 증거다. 우리나라에서 양서파충류 도감을 쓰신 김현태 선생님께서도 비자림로 인근 오름에서 2013년도에 비바리뱀을 발견하신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조사는 끝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비자림로 공사구간에 있는 대천교 아래에서 제주도에서만 살고 있는 제주풍뎅이를 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준비를 하였다.

2019년 07월 05일 비자림로 공사구간에서 발견한 제주풍뎅이

비자림로 공사에 찬성하고 지지하고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로 멸종위기 종인 그리고 제주에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드라마 명대사 생각난다.  바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대왕이 신하들에게 말했던 "지랄하고 자빠졌네"이다. 그만하시길 바란다.


두점박이사슴벌레, 긴꼬리딱새, 제주풍뎅이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멋진 녀석들아 지키도록 노력할 테니 내년에도 볕이 과랑과랑한 비자림로에서 쉬영갑서!

2019년 04월 비자림로 공사 구간, 처참히 베어진 삼나무들
2019년 07월 05일 비자림로 공사 구간 뒤편, 공사 구간 뒤에는 너무나 멋진 용암 계곡과 숲이 있다.

P.S.

제주 비자림로에서 추가적으로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멸종위기 종인 두점박이사슴벌레, 비바리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호랑물방개 등을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발견한 모든 종들에 관한 정보는 생명다양성재단측에 드렸습니다. 베어진 삼나무 뒤에 조사 구간은 너무나도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었으며 풀들도 무성하고 나무의 종류도 많고 바위에 이끼도 많아 조사하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런 조사를 하는 기회가 오지 않는 이상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잘 보전되어 있어서 접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있지만 다 담아내기가 힘듭니다. 내년에도 제가 다닌 길이 아스팔트 길이 되질 않길 바랍니다. 함께한 유철이 다미 누나 너무 수고 많았고 안내해주신 비자림로 시민단체 분들, 함께해서 즐거웠던 세계 일보 기자님 그리고 이런 멋진 곳에서 조사할 기회준 생명다양성재단측에 감사드립니다.


*'창원한' 제주 방언으로 슬픈 슬프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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