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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May 22. 2023

내 인생의 장례식

그리고 나의 장례식

You’re going to die. It’s inevitable.


1. 초등학생 때 친할아버지는 뇌졸중 후 혈관성 치매를 앓으셨었다. 큰집에 가면 할아버지 방에서 이따금씩 불편감을 호소하시는 큰 목소리가 나서 나는 귀를 막곤 했다. 언성이라기엔 의식이 없고, 비명이라기엔 어떤 의도가 있는 듯한 그 목소리가 어린 마음에 무섭기도 하여 거의 그 방에는 얼씬하지 않았다. 오랜 병상생활 끝에 돌아가셨고 깡시골도 아니건만 한옥집 대문에 노란 등을 달고 병풍을 두른 안방으로 문상객들을 모셨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막내이시기에 이미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셨고 죄송하지만 기억나는 추억은 몇 없다.


2. 뵐 때마다 늘 꼿꼿한 자세로 앉아 계셨고 누워계신 걸 한 번도 본 적 없는 휘날리는 긴 눈썹이 사극의 대감 같으시던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수험생쯤 일 텐데 집안 어른들 뜻에 따라 먼 지방에서 치러지기도 했고 이미 8자매+많은 가족으로 복작거려서인지 부모님은 장례식에 나와 내 동생을 데려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유교적 가치를 중요시 여기시던 분인데 슬하엔 8 자매만 있고 아들이 없는지라 조카 중 한명을 양자로 들이셨나 했다고 들었고 그런 복잡한 내막을 엄마는 굳이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신 듯했다. 아무튼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기억은 없다.


3. 내가 많이 닮은 울 친할머니. 대학생이었을 때다. 아흔이 넘으신 어느 날 때때로 코피를 흘리시고 점차 곡기를 끊으셔서 엄마아빠는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뵙자고 했다. 옛날 사시던 한옥과 멀지 않은 아파트에서 큰 아들 내외와 사시던 할머니. 할머니 냄새가 가득한 문간방에 들어가 인사를 드리고 앙상하게 마른 다리를 쓰다듬는데 마지막임이 직감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하늘이 맑았던 입관일 상복을 입고 장지를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고모부와 같이 모신 장지에서 하늘을 보며 천국에서 우리 가족 잘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4. 외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들숨날숨 없이 수의를 입은 육체를 본 첫 기억의 사람이다. 장의사 분들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던 차가운 방이었는데 이모들이 '우리 엄마 이쁘네' 라며 눈물과 손으로 쓰다듬는 것을 뒤에서 지켜봤다. 8 자매 중 제일 왈가닥 캐릭터의 이모는 엉엉 울며 할머니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는데 시신의 영상이라면 섬뜩하지만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담을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을 남기는 것이었기에 너무 이해가 되고 정말 슬펐다. 왈가닥 이모가 제일 승자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정말 고우셨다.


5. 성인이 되어 비혈육의 장례식 장에 딱 두 번 가봤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하게 된 오빠들 아버님의 장례식이었는데 슬픔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검은 옷을 입고 찾아갔지만 역시나 정말 서툴렀다. A 아버님의 장례식 장에서는 처음엔 향을 놓고 기도하는 것, 인사하는 것, 상주에게 조문하는 것 등 아는 것이 없어서 옆 사람들 따라 어영부영하다가 '어 방금 뭐가 지나갔냐' 했었고, 그 뒤로 몇 년 뒤 B 아버님의 장례식 때는 오랜만에 만난 B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0.5초 미소 지었던 기억도 있다. 웃지 않는 그를 보고 정신이 번뜩 들었는데, 정말 미쳤지... 손을 흔들지는 않았나 나도 모르겠다.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 이렇게 서툴었고 아는 것이 없었다.



이제 내 지인의 결혼식 소식은 끊긴 지 한참 되었다. 미혼의 사촌동생과 지인들이 몇 있지만 이미 비혼의 길을 선택한 나이라고 해도 무방하고 아마 최소 15년은 넘어야 자식들 결혼식에 초대가 될 것이며 요즘 태세로 보면 20년도 거뜬히 결혼식 갈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장례식은?


이제 겨우 시작이겠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집안의 어른들,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장례식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인체 기능적으로 심장이 멈추기도 하고, 병이 생길 수도 있고, 바깥의 물리적 정신적 모든 것들은 충분히 위협적이기도 하니까.


근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죽는다는 것. 애초에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름답고 축복으로만 가득할 것 같던 임신과 출산이나, 아니! 하다 못해 '감기'만 해도 그냥 떠올려보면 '열 좀 나고 / 콧물 훌쩍 / 목 칼칼'이 증상의 전부 같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관절 마디마디 으스러지는 듯한 근육통과 아무리 이불을 돌돌 말아도 느껴지는 오한이나, 침도 못 삼킬 정도로 아픈 목, 풀어도 풀어도 나오는 콧물, 지구가 빙빙 도는 듯 지끈거리는 두통, 항생제 남용에 대한 염려 등등'은 감기라는 두 글자가 무색할 정도로 찐 추잡스럽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레알 현실이지 않나.


근데 '죽음'과 '장례식'이라니.. 감히 상상도 못 할 것 같다. 다만 원하는 것은 그 '행사'에 돈을 많이 쓰지 않았으면 한다. 넘치는 일회용품, 머리 고기, 육개장, 술로 점철되는 행사는 없으면 좋겠다. 정해진 시간에만 문상객을 받고 차와 다과를 대접하고 싶다. 상주는 하나뿐인 내 딸이 될 테니 많은 짐을 지워주고 싶지도 않고... 미리 디저트 케이터링 가능한 업체를 알아봐 둬야 하나; 아! 카페를 운영하는 내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사진을 한켠에 영상으로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틀어주면 좋겠다. 인화하거나 액자를 준비할 필요는 없고. 물론 그럴 새도 없겠다만. 그리고 방명록에 딸에게 힘이 될만한 말 한마디씩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영정 앞에 피우는 싸구려 향도 싫다. 단, 하얗고 노란 국화 말고 알록달록 이쁜 꽃장식만 해주면 좋겠다. 마치 웨딩 플라워 같이 혹은 들풀같이 마지막을 장식해 주면 참 좋을 것 같다. (꽃 값은 좀 들겠다 :P) 시신은 화장해서 내가 지정한 장소에 묻거나 뿌려주고, 기일이면 말씀묵상과 기도 찬양이면 끝. 음식도 준비 안 하고 그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천국에서 만나자고 마음으로 내 생각 한번 해주면 좋겠다.


근데 죽었을 때가 문제다. 형제자매가 있으면 한 명이라도 정신 차려서 이것저것 분담을 할 텐데... 수습하며 보호자 역할도 하고, 주변에 연락도 돌리고 해야 하는 게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니; 슬픔만 해도 버거울 텐데... 조금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홀로 상조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을 위한 좋은 서비스가 나올려나? 아무튼 최적의 시나리오는 남편과 내가 시간차를 두고 죽고 (내가 먼저 죽을...게? ...까? 말미가 선택이 안된다. 크킄)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함께 나눌 인생의 동반자가 딸에게 생겼을 때 남은 한 명이 죽는 게 베스트겠는데... 그게 뭐 원하는 대로 되겠습니까. 딸을 걱정하니 계속 말줄임표를 쓰게 된다.


시신 기증은 더 조금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분명 숭고하고 대단하며 맞는 일인 것 같지만 좀 더 자세히 공부를 하고 잘 결심하고 싶다. 유언이랄 건 특별히 없다. 그냥 내 가족을 정말 정말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특히 딸에겐 어릴 때 종종 '엄마가 때로 화를 내고 너를 혼내도 사실 마음속 깊이는 사랑하고 있어'라고 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주고 '천국에서의 만남을 약속하는 것'이 나의 유언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삶이 너무 힘겹지 않도록 도움 될만한 경제적 자산도 함께 물려줄 수 있기를.


체감온도 49도가 육박하는 하노이 여름날에

뜬금없이 한번 생각해 본 내 인생의 장례식과 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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