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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May 23. 2023

내가 만든 세트장 뚫고 탈출하기

비자발적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아탐구기 Ⅱ

발령 이주를 하며 느낀 감정과 발견에 관해 쓰는 이야기 중 두 번째.



별일 없이 살다가


남편은 한국에서보다 더 바빴다. 평일엔 야근에 치이고 토요일도 근무를 했다. 베트남은 토요일에 쉬지 않는다. 아이는 매일 아침 7시 반에 스쿨버스를 탔고 그렇게 썰물 빠지듯 번잡한 이른 아침을 보내고 나면 4시까지 나만의 시간이었다.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면 다 꿈꿔봤을 홀로 있는 시간 말이다. 그것도 낯선 곳에서, 특별한 일 없이. 내가 사는 곳은 도시 중심가나 한인타운과는 떨어진 동네라 조용히 산책하기도 좋다. 종종 도장깨기 하듯 카페투어도 하고, 운동, 독서, OTT 시청, 그야말로 꿈같은 잉여의 시간을 누렸다. 근데 아무리 내향형 인간이라지만 혼자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맛집 투어도, 매일이 여행 같겠다는 친구들의 말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바닥에 툭 떨어졌다. 특히 집에 가만히 있다가 밖에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도 들었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공상 구름이 팡!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면 다시 모이는 가족들도 명백한 타인일 뿐이었다.

가끔 한국 엄마들을 만나면 대놓고 아이 학교 보내고 나면 뭐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애매한 답변을 했던 사람에겐 다시 만났을 때 재차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한 답변들도 없었고,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할 의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탐구했어야 하는 걸 애꿎은 데에다 뿌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 앞에서 남들은 뭘 하고 사는지 기웃거리다가 어느 날 문득 질문이 바뀌었다.

내가 왜 남의 인생을 궁금해하는 걸까?
나는 진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솔직히 그냥 ‘살아지니 사는 인생 아닐까?’
내 인생에서 정말 ‘자발적’이었던 순간이 있었나?

자발성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교시(敎示)나 영향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내부의 원인과 힘으로 사고나 행위가 이루어지는 특성"이다. 자기 내부의 원인과 힘이라니…. 내 언어로 해석해보자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탐구하고 결정한 뒤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자발적인 삶인 것 같다. 근데 이곳에 온 것도 1000% 비자발적으로 와서, 여태껏 제대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으니 남의 삶만 기웃거리고 우주 한복판에 아무것도 없이 버려진 기분으로 둥둥 부유하고만 있던 것이다.



의존이란 단어를 인간화하면 ‘이현정’일지도


그러고 보니 늘 의존적이고 두려움 많았던 유년 시절이 생각난다. 아는 이 없이는 혼자 아무 데도 안 갔던 건 기본이고 친구 따라다닌 학원, 문/이과 고민하던 때의 정말 심했던 두통 (엄마가 정했다), 입시 상담 시 결정한 과 (선생님이 정했다), 점수 맞춰 간 대학, 자소서 복붙 끝에 합격시켜준 곳에 취업.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혼자 아무도 모르게 멘토라고 점찍어둔 선임이 퇴사했을 땐 미아가 된 느낌이 나 조용히 눈물지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장 어이없는 기억은 스물여덟 결혼식 당일이다. 신부 화장 중 담당자가 “신부님, 입술은 핑크, 오렌지 중 뭐로 하시겠어요?”라고 묻는데, 하얀 드레스에 파묻힌 채 나는 크게 외쳤다. “엄마아~~엄마~~~~!!!” 새벽 6시쯤, 층고 높은 3층 미용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순간 깨닫고 부끄러워 입 다문 게 다행이었다. 예비 신혼집에, 가구 들어오는 날에도 이제 혼자 알아서 일어나 씻고 밥 먹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워 세상 서럽게 울었던 적도 생각이 난다. 남편이 산증인이네. (근데 그 와중에 인생의 많은 이벤트 중에 ‘연애와 결혼’만은 자발적 선택이었더라. 살면서 가장 자주 싸워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한 남편과의 결혼이 손에 꼽히는 자발적 결정이었다니. 짓궂다;)

아무튼, 결혼 후에도 의존의 대상자가 엄마에서 남편으로 옮겨갔을 뿐 육아 동지를 표방하며, 늘 남편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 모든 의존적 과거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유체 이탈하여 바라보듯 그간의 삶이 포착된 것이다. 마치 배를 타고 떠나다가 세트장 벽에 부딪힌 트루먼이 된 것 같았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 말이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을 시작으로 그의 인생이 30년간 생중계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의 제작진이 세트장을 탈출하려는 트루먼에게 바깥세상은 더 위험하다며 쇼 안에 머물 것을 설득하지만, 그는 늘 하던 식으로 하루치 인사를 몰아서 하고 기어이 세트장 끝 계단을 따라 문밖 진짜 세상으로 나간다. “Good morning, and in case I don't see you,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영화 Trueman show / 출처: google


그래서 다시 자발성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나도 ‘나의 결정을 따라가며 나를 세우고 (독립) 뿌듯함을 느껴보는 삶 (성취감)’을
하노이에서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만든 세트장을 내가 부수고 나가는 Good morning 인사를 매일 해보는 것이다.



달라져야 했다


여태 살아왔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장 무엇을 구체화하기엔 내 질문이 너무 거대했다. 자발적인 삶, 독립, 자아 탐구. 개인 단위의 혁신에 버금가는 단어들이다. (1)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를 생존 위협으로 받아들여 이를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큰 목표를 세우면 편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불안과 두려움이 발생하는 게 우리 뇌의 방어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원한다면 최대한 작은 ‘스몰 스텝’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행히 과거의 내가 저항감이 클 줄 본능적으로 터득했는지 나는 일상의 작은 것들부터 ‘굳이’ 이전엔 ‘안 하던’ 방법을 선택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질문부터 바꿨다. ‘대체 이루고 싶은 꿈이 뭔데?’라는 큰 질문 대신,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오늘은 무엇을 만들어볼까? (취미 부자다) 오늘은 어떤 운동을 해볼까? 라고 작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쌓이고 나면 어딘가에 도달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내면과 대화를 하고 시작하는 하루는 흐름에 따라 닥치는 대로 시작하는 하루의 빛깔과 참 달랐다. 작은 선택들을 연습해가며 나를 믿어가는 과정이 참 좋았다.

어떤 날은 외적으로도 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기껏 해봐야 탈색, 타투, 피어싱 수준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알아차린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내가 그간 누군가를 참 많이 의식해오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가족이기도 했지만 철저히 추상적인 남이기도 했다. 가장 먼 타인은 만난 적도 없는 학부모들의 눈이더라. '내가 무언가를 하면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우리 아이를 뭐로 보겠어?' 하는 따위의 생각. 실제로 이 생각을 한 적은 없는 듯하지만, 결코 없다고도 말 못 할 그런 것들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여름엔 귓바퀴에 피어싱 하나를 뚫었는데, 고작 이 작은 것 하나로 매일 거울 볼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낯선 땅에서 긴장감을 조금 더 이완시켜 주는 장점도 있다. 겉모습이 어떻건 간에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서 남모를 전투를 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잘 모르는 이웃도 괜스레 한 뼘씩 더 친근해져 편안한 느낌이 든다.

물론 가끔은 조금 외롭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나를 발견하고 이해해 가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예전에는 ‘왜 이러지?’ 하는 물음만 가득했고 탐구할 생각도 못 했다. 사실 모르는 줄도 몰랐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 내 모습에 친절히 이름표를 하나씩 붙여가며 원하는 모습으로 연습하고 살다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진짜 나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시행착오도 기본 옵션임은 물론이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나에게 더 친절한 내가 되길 바라며 하루라는 덩어리를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보듬어 본다.



(1) 로버트 마무어(UCLA 의과대학 임상심리학자) 저서, 아주 작은 반복의 힘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 레퍼런서Ⓡ 이현정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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