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이해하는게 더 빠를려나...
모든게 낯선 해외 생활을 시작하며 그 어떤 커뮤니티보다 더 먼저 발을 들였던 사모임, 북클럽. 3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2주에 한권씩 돌아가며 책을 정하고, 읽고, 나누고를 반복한다. 이번주 북클럽에서 읽은 책은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베리가 전해주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
고등학생 때 시험전날 극에 달한 막막함과 답답함에 울었던 밤을 기억한다. 바로 물리 시험 전.
경사면에 있는 물체 1의 가속도 물어본 사람 누구야.
1kg 질량의 쇠구슬이 달린 용수철, 언 놈이 10cm 잡아당겼어?
공 튀어 오르는 높이는 왜 궁금한 거야. 나는 관심 없는데...
겨우 고등 물리도 큰 산 같았던 게 떠올라 살짝 겁이 났다. 오죽했으면 눈물이 났겠냐고...
하지만 서문의 첫 문장을 읽고 오 다행이다 했지.
“이 책에 소개된 강의들은 현대 과학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와 그 사람 여기 있어요!
그러나 역시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순서대로 등장.
이번 기회에 물리의 ‘미음(ㅁ)자’ 이라도 알아보자 싶었지만 북클럽 멤버들끼리 책 후기를 나눠 적는 공책에 내려앉은 햇살이 이뻐 사진을 남겼을 뿐이고...
절대 쉽지 않았다.
누군가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잘 이해가 안 갔다면 잘 이해한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햇빛에 반짝이는 먼지를 보고 아 이쁘다 소리는 나올지언정, 이게 광자를 부유하는 원자 덩어리라고 하면 흥미도가 확연히 떨어진다. 계절별 별자리를 보면서 감탄하고 '와 오늘따라 달이 더 커 보이네' 하는 건 재밌지만 '거대한 별이 연소되면 무거워져 별 스스로 무게에 짓눌리게 되고 심지어 공간을 매우 강하게 만들어 휘게 만들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이게 바로 블랙홀이야!'라고 하면 활자는 읽겠다만 이해되지도 않고 참… 물리의 언어들은 그야말로 외국어 같다.
하지만 몇 년 전 지구 어느 곳에서는 과거의 천재들이 예상했던 개념과 똑 닮은 블랙홀을 인류역사 최초로 촬영까지 성공했다지. 나와 동시대를 사는 같은 인간들의 업적이 맞나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의 삶은 '물리 덩어리' 라고 한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들, 전자레인지, 냉장고, 휴대폰도 모두 물리과학이 적용되지 않은 게 없다. 인간이 내뱉는 한숨도, 심지어 소가 뀌는 방귀량도 계산되는 걸. 우리가 존재하고 결정하는 것도 물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에도 철학과 종교, 사후세계 등 영적인 것들 이야기 까지도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래서 책 제목이 '모든 순간의' 물리학인가 보다.
이 책을 요약을 하거나 과학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교과서나 이론서 한 권을 보고 정리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다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물리 자체에 대한 이해보다는 물리학을 사랑하고 탐구했던 어떤 인류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생겼다. 마치 나와는 대척점에 있어 '다른 종' 같이 느껴지는 인간들에 대해 알아본 시간이 된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버티는 것들에게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파고들어 끝끝내 증명하려는 인간들. 과학적 언어로 아직 증명이 어려운 다른 세계, 인간 존재의 의미와 철학까지 호기심을 품고 답하려는 노력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나는 여전히 물리학이 어렵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듯 내 생각과 지평이 조금은 넓어지는 게 아니겠나.
역시 북클럽의 묘미는 혼자라면 절대 안 읽었을 책을 읽어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