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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Jung Sep 14. 2023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알쓸 시리즈의 슈퍼루키와도 같은 심채경 박사. 조용히 세상 온화한 미소를 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그녀가 궁금해서 초록창에 검색을 할 때면 늘 이 도서가 같이 나왔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

'뭐? 천문학자가 별을 안 본다고? 그럼 누가 봐? 그대들은 뭘 본다는 거야?'

마치 '엄마는 제 자식을 보지 않는다'라는 말과 동급으로 느껴졌다. 근데 책을 조금만 읽어보면 알게 된다. 그들이 아름답게 비추는 반짝반짝 작은 별을 보지 않고 무엇을 보는지 말이다.


특히 심채경 박사는 트윙클 리틀스타의 먼지와 대기를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선 '스타'도 아니고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 대기의 스펙트럼을 관측하고 분석하고 모델링하는 게 대학원에서 주로 했던 연구라고 했다. 저 기가 막힌 제목은 천문학자에 대한 무지함으로 나의 주목을 끌었고 그걸 노린 작가 혹은 출판사는 천재인 것이지!


이런 무지한 나지만 별은 사랑한다. 아래는 2020년 12월 엄청 추웠던 날, 벗고개길에서 찍은 사진.


겨울철 별자리답게 왼쪽엔 쌍둥이자리, 우측엔 오리온자리가 있다. 황소도, 토끼도 조금씩 걸쳐 있다지. 심도 깊은 덕질까지는 못해도 별에 관심이 많아 길 가다 문득 별자리 앱을 켜고 하늘을 보기도 하고, 타임랩스로 간직해 둔 월식도 있다. 우주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백과사전을 넘겨보고 위키피디아 웹을 읽어도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서 감상에 치우친다는 게 슬플 뿐이다.


이런 나 같은 일반인에게 '천문학자'라고 하면 왠지 이공계 전문가들 중 제일 감성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에세이로 분류된 이 책도 소소한 과학지식을 곁들인 달달한 컵케이크 같은 내용이려나 했는데 결코 가볍지도 달달하지만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를 소개하는 화려한 수식어에 어울리게 잔다르크 마냥 이 나라의 척박한 우주연구 환경에서 고군분투한 경험을 나눈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읽고 나면 개인적으로 그녀의 인상에서 느껴졌던 것과 같은 담백함 그리고 은은하면서도 뭔가 묵직한 기개 같은 것들이 전달되고, 같은 세대의 여성으로 그리고 엄마로서 인생의 굽이굽이를 버티며 또 즐기며 지나왔구나 싶다.


그리고 참 솔직하다. 인류의 공동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하는 우주 과학자인 동시에 월급과 연구비 충당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계약직 노동자로서의 민낯에 대해서도 말하고, 또 네이처 인터뷰 건에 대한 미디어의 포장 등에 대해서도 참 남 말하듯이 담담히도 전한다. 이런 게 또 그녀의 매력일 테지. 탐나기도 하는 부분이었는데 아마 그건 그녀가 본래부터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클 거란 인상을 많이 받았다. 한창 우르르 몰려다닐 십 대 때도 가만히 아무도 없는 외딴 동물원 유인원 관에 가서 관찰하다 나왔다는 그녀의 청소년기에 대한 설명이 그러했다. 그리고 수백광년의 먼 우주에서부터 전달되는 그래프와 숫자들과 싸우는 고독한 연구자로서 때로는 외롭고 괴롭고 어떤 압박감에 미어터지는 듯해도, 모두 퇴근한 고요한 자리에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집중하면 어느샌가 무거운 짐들이 덜어지고 작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듯했다. 실제로 책에서도 그런 면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나온다.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 다른 사람이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큼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하나를 들여다봐도 이건 왜 그런지, 저건 왜 그런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면 하나씩 일일이 검색해 보고, 찾아서 읽어본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료를 분석해 보고, 그래프도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본다. 그러다 보니 한 단계 전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즐거운 지루함이 자연의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다.


아 이런 사람이 진짜 연구가, 탐구가, 학자구나 싶은 대목이다.

그리고 어제 독서 모임을 하며 재밌게 읽었다고들 하는 멤버분들께 질문을 하나 던졌다.

"만약 자녀가 천문학자 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안되죠!" / "아유 힘들어요!" / "뜯어말려야죠!"

  

이런 인지부조화라니 크크. 뜯어말리시겠단다. 심채경 박사가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어필하셨고 읽은 나도 우리도 참 맞는 말이다 하고 동의를 했지만... 이해도 되고 참 웃픈 현실이다. 언제, 어떤 결과를 내보일지 모르는 우주탐사 보다 밥 한 그릇 해결이 먼저인 현생이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성탐사선에 부품 하나라도 보태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 작가는 자기 자신이 어떤 통찰력이나 원대한 목적의식을 갖고 이 일을 시작했다기보단 그저 학부생 당시 교수님이 "목성 스펙트럼 누가 할래?" 해서 "저요" 했고, 대학원생 때도 "타이탄 누가 할래?" 해서 또 "저요"해서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이렇게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싶다며 겸손한 말을 전했지만 정말, 진실로, 저렇게 하는 사람만이 저렇게 하다 보면 뭐라도 되는 것 아닐까.


묵묵히 날아오는 데이터를 필터링하고 융합시켜 단단한 에너지로 저렇게 뿜어내는 사람들. 아 멋지다.

좋은 책 꿀꺽 잘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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