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해보는 거지 모
한낮의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하노이 여름. 해지기 시작할 무렵, 바람 덕분인지 한낮보다 더 선명해지는 풍경을 보며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동시에 이리저리 늘리고 당겨보며 스트레칭 시작. (근육) 얘들아 뛸 시간이야. 정신 차려. 집 앞 30m 슈퍼 가는 길 예고 없이 뛰었다가 등에 담이 온 적이 있어, 늘려주고 두들겨 주며 근육들을 깨운다… 지만 성격이 급해 워밍업이 오래가지 못한다. 뛰면서 기름칠하는 느낌으로 무겁고 삐걱대는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가 보면 걷는 줄 알지도 몰라. 근데 앗 벌써 무릎이 아프잖아. 정신 차려라. 야야! 진짜 손으로 무릎 주변을 막 때린다. 그럼 정신 차린다. 진짜다. 와 오늘 플레이리스트 치이네. 랜덤으로 해뒀구먼 천천히 뛰는데 또 그 갬성이랑 잘 맞는다.
나중에 리스트를 보니 이러했다
홍이삭 - 내 사랑 내 곁에
오왠 - 오늘
아이유 - love wins all
잔나비 - 가을밤에 든 생각
wave to earth - bad
다니엘 daniel - 은방울 (최고였어!)
알레프 - No one told me why
최유리 - 바다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적재 - 나랑 같이 걸을래
나처럼 입꼬리 올라간 신난 댕댕이들도 보고, 주먹만 한 개구리가 튀어나온 배를 마지못해 안은 듯 꾸룩꾸룩 뛰며 인도를 지나는 것도 보고. (이젠 놀랍지도 않아. 쥐만 아니면 괜찮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제쳐 지나간다. 괜찮다 괜찮다 레드썬! 기죽지 마. 속도 내지 말자. 마주 보며 뛰어오는 사람들과는 괜히 반가운 마음. 아까 나를 제쳐갔던 사람이 앞에 걷고 있다. 오예 내가 제쳤다. 그 사람은 10km 뛰고 쉬고 있을지 모르지만 순간은 달콤하다. 관절이 뜨거워지고 등 뒤로 귀 옆으로 시원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마음먹은 반환점을 돌아오며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해는 완전히 넘어가 별들이 보인다. 띄엄띄엄 별 몇 개랑 그리고 짙은 남색 하늘에 그림자처럼 삐죽 대는 까만 야자나무. 그리고 사이로 초승달이 반짝이는 게 ’와 그림 같아!‘ 사진을 남겨보지만 실물만 못하지. 후다닥 대충 사진을 남기고 다시 러닝 시작.
땀으로 끈적해진 주먹을 피리 부는 왕눈이 손가락 마냥 쫙 펼쳐본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바람을 들인다. 와 가성비 갑이다. 전체 신체 중 작은 부분이건만 두툼한 양말과 신발로 뜨겁고 바쁜 발, 꽉 조이는 브라탑 입은 가슴통, 두 겹 하의의 후끈함을 잠시 잊게 해 주고 쉬워어어언하다. (하버드 누드 러닝. 아주 해방감이 장난 아니겄어요?)
1. 행사 개요
• 공식 명칭: Primal Scream
• 장소: 하버드 대학교, 특히 하버드 야드
• 일시: 매 학기 기말고사 전날 밤 자정
• 내용: 학생들이 옷을 벗고 하버드 야드를 한 바퀴 도는 전통
2. 유래와 목적
• 처음에는 단순히 기말고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자정에 비명을 지르던 전통에서 시작.
•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학생들이 옷을 벗고 뛰기 시작했고, 현재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벌거벗고 야드를 도는 이벤트로 자리 잡음.
• 스트레스 해소”, “자유의 상징”, “공동체 유대” 등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chat GPT)
며칠 전 뛸 때 처음으로 언덕 조금 올랐다고 새로운 곳에 근육통이 생겼더랬지. 몸은 참 솔직해. 기록들 보니 5월인데 작년보다 반 넘게 뛰었다. 와 기분 좋다. 뿌듯하다. 이 맛에 느려도 또 뛴다. 한동안 못 뛰었더라도 또 알아차렸으면 그냥 옷 입고 나가 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