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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Jul 13. 2024

무엇이 생산자의 삶을 주저하게 했을까

나를 성장시킨 책


1. 책의 맨 끝에 이런 문장이 쓰여있다. “이 문장들이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움직이게 될지는 이제 읽는 사람의 몫이 되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 책의 어딘가 당신의 문장이 하나쯤은 있길 바란다.” 하나쯤이라니. 책의 모든 문장이 인생 문장이 되었는걸. 곁에 두고 꺼내보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2. 살면서 셀 수 없는 문장들이 나를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어떤 문장은 나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나의 태도를 바꾸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내 인생의 중요한 징검다리가 됐을 그 수많은 문장들을 스쳐 지나가듯 보내버렸던 것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다.


3. 싸이월드 시절부터 영화의 명대사 모으는 걸 좋아했던 저자는, 카피라이터를 꿈꾸며 광고카피를 함께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포트폴리오 대신 오랜 시간 모아 온 문장 모음집으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입사 이후에도 문장 모으는 습관을 꾸준히 유지했다. 자신만 보기 아까운 문장들은 책으로 엮어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선물이 출판사에게까지 닿아 <나를 움직인 문장들>이라는 근사한 책으로 탄생했다.


4. 같은 것을 보고 누군가는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소비자에서 그친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을 생산자와 소비자로만 나누면, 생산자는 10명 중 1명 뿐이라고. 대다수는 소비자의 삶을 산다.


5. 나의 경우 30년이 넘는 시간을 소비자로 살다가 몇 년 전부터 생산자가 되는 훈련을 조금씩 하고 있다. 읽는 것은 물론, 먹고, 듣고, 경험하며 느끼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산자로 살아가는 기쁨과 가치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기억 속에서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었을 텐데, 왜 난 그러지 못했을까.


6. 오랜 시간 생산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소비의 안도감 때문이었다. 나는 소비가 곧 생산이라는 착각을 오랫동안 했다. 내가 읽고 있는 누군가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 되고, 내가 보고 있는 누군가의 경험이 곧 나의경험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막상 글을 쓰려하면, 또 말을 하려 하면 수박 겉핥기식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남의 것을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과정, 즉 내가 소비한 것을 생산자가 되어 꼭꼭 씹어먹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완벽히 내 것이 되지 않았다.


7. 그보다 더 큰 것은 생산자로서의 두려움이었다. 사실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은 도처에 널렸고 세상엔 이미 충분히 많은 정보들이 존재하는데, 나처럼 보통의 사람이 쓴 글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은 완전히 없어지질 않아서 결국 내가 찾은 방법은, (잘 모르겠고) 일단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용기를 주는 말들에 종종 응원을 받는 것 정도.


8. 이번 책에서도 응원을 받은 문장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마스터 클래스에서 "감독님에게 관객이란 어떤 존재인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영화 산업에서 감독뿐 아니라 프로듀서, 특히 투자 배급하시는 분들은 관객에 대한 거대한 공포감이 있고, 그 잘못된 공포로 인해서 많은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해요. ‘관객을 모른다’, ‘관객의 실체가 무엇이며 관객이 뭔지 알 수 없다’라고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저는 관객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요. 어차피 모르는 것이라는 거죠. 어차피 모르고 예측이 불가능할 바에는 소신껏 하자는 거죠. 자기 자신한테 충실한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9. 이 책은 이렇게 묘한 책인 것이다. 소비하고 있지만 생산하고 싶게 만드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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