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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Jul 13. 2024

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읽기와 쓰기, 그리고 듣기

나를 성장시킨 책


1. 김하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여성들을 위한 연말파티였다. 당시만 해도 김하나 작가를 몰랐던 나는, 하필 마지막 세션인 작가님의 토크를 들을까말까 고민했더랬다. 만약 그렇게 강연장을 나왔더라면..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는 그날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2. 김하나 작가에게 푹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말하는 방식' 때문이였다. 김하나 작가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하기 원칙'을 놀랍게도 모두 지키고 있는 사람이었다. 신뢰감을 주는 중저음의 톤과 안정적인 호흡, 명확한 발음과 센스있는 어휘력, 여기에 뾰족한 말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하는 스킬까지. 그녀의 말하기를 배우고 싶어 그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역주행을 시작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가 말하는 '말하기'가 궁금해졌다.


3. <말하기를 말하기>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책은 '말하기'에 대한 김하나 작가의 관점을 풀어낸 책이다. 낯선 이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려웠던 한 소녀가 '말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 기나긴 과정이 충실하게 담겨있다. 책을 다 읽을 때쯤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 "역시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구나.말하기에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4.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는 사람'이라 소개할 수 있게 된 건 어느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그녀의 말하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김하나 작가처럼 말할 수 있게 된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말하기의 순서'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말할 것 같다.


5. 김하나 작가는 스스로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말하기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말하기가 가장 뒤에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짧은 단어 안에 그녀가 생각하는 'how to say'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 또한 항상 이 순서를 분명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했다. 좋은 재료 없이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없듯, 말하기의 재료 없이 말을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 말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채우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6. 재료를 채워넣었다면 그걸 자신의 언어로 한번 더 정리하고 소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 중에서 '프로 인풋러'가 있었다. 기사부터 소셜 콘텐츠까지 어떻게 저 많은 걸 매일 다 읽지 싶을 정도로 그는 새로운 지식을 채워넣는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지식을 알려주며 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단 한번도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하기는 대부분 "요새 oooo 이 유행이래요" "이제 xxx가 뜬대요" 같은 현상이나 흐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말하기에는 그만의 관점이 없었다.


7. 얼마 전 읽었던 아티클에서도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통 우리는 어떤 대상을 보면 그 대상을 이미 이해했고, 잘 기억할 거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 본 것을 꼭 손으로 써봐야 한다는 게 그 글의 핵심이었다. 우리 손의 속도는 뇌의 속도보다 느리기 때문에 손으로 그리거나 글을 쓰는 동안에는 뇌도 손에 맞춰 천천히,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돕는다고 한다.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이 모두 말하기 재료가 된다.  


8. 읽고, 썼다면, 마지막은 듣기다. 나는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만큼 듣는 태도 또한 좋아한다. 상대방과 말할 때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도 따스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에 온전히 몰입하는 그 집중력도 좋다. 그녀의 말하기를 완성하는 이러한 듣는 태도는 어떻게 다듬어진걸까. 김하나 작가가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시절, 그녀는 어느 오프라인 모임의 회장을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해보려 노력했다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보낸 3년의 시간이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던 그녀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고.


9.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미리 재단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내가 경험할 생각을 안 해봤던 분야에도 나름의 멋진 우주가 있음을 알게 된 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미덕과 흥미롭고 반짝이는 부분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회의실에서 '너는 아웃이다'를 속으로 읊조리던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옹졸했는지를 진심으로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의 세계는 어떤 걸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그 사람이 나와 다르면 다를수록 '저럴 수도 있구나' 하며 경계가 부서지고 내 세계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더이상 낯선 사람을 불편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굉장한 변화였다." 누군가의 말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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