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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덕 Jul 10. 2024

[종덕글귀] 문제

올해의 절반이 지난 지금, 공허함에 대하여

 오늘은 어떤 공허함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은 이게 어떤 기분인지, 상태인지, 감정인지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길고 긴 생각 끝에 애매하게 공허함이라고 칭해본다. 비슷한 상태였던 적은 있지만 확실히 처음 느껴보는 기분인 것 같은데, 외로움, 심심함, 흔히 말하는 인생 노잼 시기 이런 것과는 다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로 정리하면 조금은 알아차리지 않을까, 혹시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처음 겪는 이런 기분에 대해 남기고 싶어 오랜만에 글을 쓴다.

 오해가 있을까 말하지만, 나는 지금 우울한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안정된 돈벌이, 안정된 가족, 안정된 관계들. 이 ‘안정된’이 문제였을까? 내가 그렇게 다이나믹하고 사건사고 많은 주인공 서사를 원하는 사람이었던가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역시 아니다. 나는 지금이 좋고, 조금이라도 피곤한 상황에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예민한 사람이다. (오히려 큰 일엔 담담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안정된’ 상황이 깨져버릴까 불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인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것도 맞겠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닌 것 같은 느낌.

 요즘 들어 이런 것에 대하여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차이는 있겠지만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며 어떤 비슷한 사회적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중이니까. 이야기를 해보면 반 정도는 나의 상태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하고, 반 정도는 격렬히 공감하는 것 같다. 그렇게 갈리는 사람 유형을 들여다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이해를 잘 못하는 부류는 현재가 더 중요하고, 현재가 편안한 상태. 격렬히 공감하는 부류는 좀 더 미래지향적, 목표지향적인 사람 같았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한 견해이다)

 공허함을 느끼는 우리들은 하나같이 삶의 목표를 잃었다. 소소한 목표나 행복한 삶에 대한 뜬구름 같은 목표가 아니라, 진정 그 순간 나의 전부였던 ‘삶’의 목표 말이다. 입시라는 목표가 있던 학창 시절, 대학 졸업, 취직, 이러한 목표를 모두 이루고 나니 나에겐 그 어떤 때보다 안정된 삶이 찾아왔다. 더 이상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오는 공허함이었던가.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길 바라지도 않는데. 아마도 그런 목표가 그리운 게 아니라 그걸 향해 가던 나의 열정이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부류가 나는 부럽기도 했다. 나도 이런 찝찝한 기분 없이 현재의 안정된 삶과 행복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아마 내 안의 감정 컨트롤러는 ‘불안이’인 게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이런 무기력함에 가만히 압도당할 성격도 아니기에 이런 생각에 대한 생각조차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나 보다. (참 피곤한 성격이지만 거기서 나의 글들이 나오니 마냥 나쁘지만도 않다)

 그들처럼 편안한 상태를 즐기려 노력해 볼까 하다가 적성에 안 맞고, 또 다른 거창한 삶의 목표를 세워 열정을 피워볼까 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목표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편안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처럼, 이러한 불편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했다. 이러한 글도 쓰면서, 친구들과 그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그로 인해 더 성숙해지는 나를 발견하면서. 언젠가 또 나를 불타오르게 하는 목표가 생기, 이 편안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생기, 또는 그렇지 않. 그 모든 나를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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