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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Sep 05. 2020

여우씨의 몰입의 정신

프란치스카 비어만 <책 먹는 여우> 독후 에세이 2



https://brunch.co.kr/@h-nariii/3


<책 먹는 여우> 독후 에세이 1편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여우씨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독일 동화 <책 먹는 여우>의 주인공 여우씨는 우리네 정서로 보자면 '권선징악'에 반대되는 유형이다. 책이 맛있어서 먹어치우다가 결국 서점에서 강도짓을 한 혐의로 구속된다. 그리고 감옥에서 자신이 '먹기 위한' 소설을 만들고 그 책은 우연찮게 출간되어 명성과 부를 거머쥔다.



감옥에서부터 애독자가 생긴 여우씨. 탁월한 작가임이 분명하다.




몰입의 힘



여우씨는 단 책 한 권으로 17개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녔으며 오히려 당연한 결과였다. 그 이유는 바로 '몰입'에 있다. 몰입을 해 본 사람이라면 시간이란 것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흘러가는지,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도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몰입은 내면의 펌프가 되어 저 깊숙이 숨어있던 잠재력과 에너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에너지, 그리고 호르몬이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어서 몰입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육체의 지원군이 되어 상생한다.


 물론 몰입이 어느 때나 가능한 건 아니다. 무엇이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것은 내가 즐길 수 있는 일, 혹은 의미 있는 일을 할 때이다. 당연하게 들릴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 역시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 강연 분야에서 손꼽히는 김미경 강사가 자신의 월드투어 토크쇼에서 "아무리 좋아하는 꿈도 싫은 일이 반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김미경 강사는 본래 음대 졸업생으로, 전공을 살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꿈에 이끌려 강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눈 앞에 있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자신의 강연을 보러 오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선 고된 강연 준비를 해야 했다. 짧으면 30분, 길면 서 너 시간 걸리는 강연을 위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도서관과 현장을 돌며 공부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건 강연이었고 가장 싫어하는 건 강연 준비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심지어 성공을 했어도 고달픈 일을 반복하는 건 여전한 숙제인 것이다. 그나마 이 경우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사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일하는 것 자체도 어느 정도의 운과 능력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까지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며, 현실적으로 그 일을 했을 때 정작 생각과 다를 확률도 높다. 결론적으로 원한다고 다 될 순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숱한 불일치 속에서 현실을 살다가, 이따금 공허하고 불안해하며 이내 또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지금'을 경험으로 삼자

 



 그렇다면 어떻게 일터와 내 생활 반경 안에서 몰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많은 인문학 서적들은 이렇게 답한다.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보람이 있습니다. 보람은 성취와 달리 목표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특정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지 않아도 올바른 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탁석산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중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느냐, 무엇을 실패로 간주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다.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윌리엄 제임스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나에게 허락된 일상의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경험하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모든 것을 다만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분명 보상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열심히 하면 열정 페이가 남는다는 식의 말은 아니다. '지금'에 집중하는 그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할 거리를 계속해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주어진 삶을 통해 몰입을 연습해나간다면 분명 '내가 원하는 무엇'으로 나아갈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각광받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역시 열등감은 타인에게 갖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에게 갖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몰입을 통해 우리는 영혼의 성장을 거듭해 나아가며 우리도 모르는 미지의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니카 페트 <행복한 청소부>



독일 글루크 거리를 청소하는 한 청소부가 있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이 청소하는 표지판과 거리가 베토벤, 바흐 같은 음악가와 괴테, 브레히트 같은 작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장소였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청소부는 거리의 '마이스터'가 되어 표지판을 닦으며 위대한 음악가와 작가의 강연을 혼자 읊조리게 되고 이는 금세 세상의 뉴스거리가 된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에 행복을 찾고 전문가가 된 한 청소부의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이다. 하지만 청소부는 모든 제의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이따금 손가락 끝으로 너무도 소중해진 이름들을 어루만지며' 거리를 청소해나간다.


 이 동화가 주는 결론 역시 진정한 행복과 몰입은 일상의 배움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속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 안에서의 태도를 결정하는 건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독서 금지'로 인해 자신이 사흘반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 낙심하는 여우씨


논어에 "선 즉 변(選則變)"이라는 말이 있다. 선택을 하면 반드시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가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우선 결정하면 그 결정을 이루기 위해 사람은 움직이게 되어있다고 한다. 관성의 법칙이 꼭 자연과학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구치소에 갇혀서 이제는 빵밖에(너무 가혹하다) 먹지 못하게 된 여우씨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낙담을 하고, 그 순간 자신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후의 일들은 "마치 동화처럼" 벌어졌다.


쉬지 않고 책을 쓰는 여우씨.(영문판이다.)


마치 이런 일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자신도 모르게 923페이지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은 1호 애독자 빛나리 씨가 이틀을 결근할 정도로 재밌었고 이를 계기로 여우씨는 출소까지 하게 된다.


 몰입은 관성의 힘이 있다.


독일제 Jnghans Meister 시계



 몰입의 힘은 굉장한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한 존재를 성장시키며, 그 결과물 역시 찬란하다. 이를 물건으로 빗대자면 '마이스터 표' 제품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보통 독일제가 많다.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는 라틴어의 선생님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로, 마이스터 교육제도가 따로 있다. 이 교육을 통해 교육생은 짧게는 6년에서 길게는 12년까지 한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다. 긴 여정 끝에 마이스터 교육을 마친 수습생은 ‘박사학위’에 준하는 마이스터 자격을 부여받는다. 10여 년의 몰입으로 나오는 그 에너지의 경쟁력은 당연하게도 가히 다른 여타 제품과는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여우씨도 몰입의 대가였기 때문에 그처럼 흡입력 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고, 든든한 지원군인 빛나리 씨도 만나게 된 것이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게끔 운이 도와주기도 한다. 이 힘의 출처는 많은 인문학자들이 말하기를 ‘온 우주’다.








현재 주어진 것들에 충실하며 배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에 몰입하여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아간다면 분명히 영혼의 이정표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알프레드 아들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이 순간 현재 속에서 춤을 추면 되는 것’이기에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우리를 일상으로, 더 일상으로 몰입시켜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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