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꽃 Sep 19. 2020

잘 '죽길'원한다면 잘 '살기'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독후 에세이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영화로도 개봉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좋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는 것 역시 좋다. 글을 쓰면 대상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집중하게 되기에 책을 더 오래, 다양하게 음미할 수 있다. 나만의 좋은 책의 기준은 때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현재의 삶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을 특히 선호하는 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을 통해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 했다."라고 하며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이토록 산다는 건 소중한 것이다.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깊은숨을 내뱉으며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현인들은 거듭해 강조해왔다.



 시간은 계절을 타고 흘러 어느덧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기에 다다랐다. 하지만 각자의 짐을 지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종종 계절마저 잊고 지낼 때가 더러 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이토록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던 건 이러한 무지의 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루게릭 병으로 서재와 방 안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했던 모리 교수가 창가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매일 저 창 밖을 내다보지. 나무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람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아차린다네.
그것은 시간이 창틀을 지나치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하지. 내 시간이 거의 끝났음을 알기에,
처음으로 자연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에 마음이 끌린다네."

    

일생을 착취가 아닌 나눔을 위해 바치고 싶었기에 그는 교수가 되기를 택했다. 그렇게 일생을 연구와 강연에 바치길 마다하지 않던 노교수 역시 병마가 찾아왔을 즈음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음을 고백한다. 60대엔 친구에게 '자네가 본 노인 중 내가 가장 건강한 노인이 되었있을 거라네.'라며 단언하기도 했던 그였다. 죽음을 통해 사람은 무엇을 바라볼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지만, 이 주어진 운명에 예의 주시하진 않은 채 살아간다. 이를 모리 교수는 '우리가 반쯤 잠든 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일침 한다. 이처럼 깨어있지만 온전히 깨어있진 않은 채로 우리가 우리 삶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씩 돌아보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잠들게 만드는 것일까?


"미치, 우리의 문화는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놔두지 않네.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휩싸여 살고 있어. 경력이라든가 가족, 주택 융자금을 넣을 돈은 충분한가, 새 차를 살 수 있는가, 고장 난 난방장치를 수리할 돈은 있는가 등등.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인가?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뭔가 빠진 건 없나?' 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문화를 '이기적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더 나은 것과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꿈꾸고 욕망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사실 사람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더 나아지고자 함' 속에서 문명을 이룩해오고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 부작용은 불안과 시기심이다. 이로 인해 우린 보이지 않는 투쟁을 삶 속에서 감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의 사소한 선택을 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 조던 피터슨은 인간이 하루 평균 5백 가지의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내 수중에 얼마가 있고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벌이가 더 나아지거나 내 생활수준이 좀 더 안락해져도 안도감은 그 순간뿐이다. 선택의 폭은 끊임없이 결승선 없는 마라톤처럼 확장되고 우리를 재촉한다. 더 뛰어야 한다고.

 이 타는 목마름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이 진정 죽음의 길목에 서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해냈으며 그 본질을 얼마나 맛보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고 한다.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사려 깊은 삶을 살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과연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을 때가 되어서 자신이 진정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곡하는 꼴이 되고 싶지 않았고,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이토록 소중한 일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삶의 진정한 본질을 맛보기 위해 인생이라는 실험에 감행했던 28세 젊은이 헨리 소로우 역시 이와 같이 말한다. '보헤미안' 인생관을 지녔던 그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삶의 본질을 깨닫는 작업이 극단적인 상황(죽음에 맞닿뜨렸을 때, 혹은 이러한 파격적인 모험에 감행할 때)에서야 체험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모리 교수의 제자이자 책의 저자인 미치 앨봄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화려한 분야를 장식하는 스포츠계의 유명인사였다. 스포츠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아직 건장한 젊은이였고 살아갈 날이 한창이었다. 그런 그에게 모리 교수는 삶의 혜안에 대해 알려준다. 그 방법은 '집중하는 것'이다.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되네."


무엇이 좋고 진실한지 인생 속에서 찾아내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있다.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인생의 과제이다. 다만 이 과제를 떠올리며 우린 두 가지를 생각해봄직하다.


'지금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나중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나무마다 열매가 다르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삶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완수해내고 결실을 만들어내는 건 각자에 달려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인생의 과제이다. 나의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거듭해나가다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어느 순간 자유로워지리라 믿는다.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 없는 갈증에 조금은 물러나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보는 건 분명 가치 있는 시도이다. 모리 교수도 이러한 삶의 가치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사람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며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희망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잘 살아가는 것이 결국 잘 죽을 수 있는 방법이다. 모순적이게도 잘 죽기 위해선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이라는 성실한 감시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