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대학생들의 졸업여행 프로젝트
시작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졸업여행을 계획하는데 단체 패키지가 너무 비쌌고, '발달장애'라는 말에 곤란해하며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염려가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우리 학생들이 어떤 아이들 인지도 잘 모르면서,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에 모두 같은 사람으로 묶어서 치부하는 것이.
나는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며 지적장애, 자폐성장애는 모두 중증으로 분류되지만, 우리 학생들은 전반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증 장애는 거의 없고 대체로 일상적인 생활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우리 학교는 경증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취업을 하고 자립적인 생활을 하며, 일방적인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번듯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육을 한다.
실제적인 삶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 학생들에게는 교실 안 수업보다는 학교 밖 활동들이 효과적이기에 우리는 다양한 수업과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특히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우리는 학생들과 캠핑,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분야에 도전해 왔다. 그중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활동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올해 졸업여행 대상자인 3학년들은 마침 거리두기가 제한적으로나마 풀리던 시점에 입학하여 1학년 때부터 청평, 춘천, 서울, 강릉, 제주도 등으로 여행을 다녔었다.
여행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 조사하고, 친구들과 의논하여 선택하고, 가는 길을 찾고, 비용을 계산하고, 필요하면 티켓도 예매하고, 용돈을 모으고, 계획한 것들을 실제로 실행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물론 배운 것을 모두 온전히 습득하는 것은 아니나 부모나 기관에서 준비한 여행에 졸졸 따라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여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은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다.
그래서 문득, 졸업여행을 자유여행으로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올해 3학년들은 인원이 많지 않았고, 절반 가량은 대중교통 및 지역사회이용이 원활한 학생들이었다. 요즘 아이들답게 스마트폰 활용도 곧잘하고. 능력이 우수한 몇몇 학생들은 1학년 때 다녀온 강릉을, 자기들끼리 모여 기차표를 끊고 다시 여행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아이들인데,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패키지여행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건 편견이고 차별이다.
억울함은 도전의식으로 바뀌었다.
지하철로 이동이 용이한 여행지를 고르고, 준비를 충분히 하면 해외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무시한 채 많은 것들을 무작정 ‘불가능’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함께 준비할 만한 동료들과 생각을 공유했고, 윗분들에게 허가도 받았다.
대안학교라 재정적으로나 직원복지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오랫동안 그만두지 않고 일을 하게 하는 건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함께해 주는 동료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쉬운 단체패키지를 놔두고 어려운 자유여행을 추진해 보자고 해도, 그게 학생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면 단지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꺼리는 사람은 없다.
일반학교라면 안전사고 등의 우려로 반대하기도 하고, 통제불가능한 사건사고도 교사의 책임이 되기에 선뜻 시도하기 어렵지만 우리 학교는 그런 제약도 크지 않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일반학교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안타깝게 그지없다. 학교는 아이를 문제상황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보내는 곳이 아니고, 교사는 마블히어로가 아니다.
안전을 이유로 보호만 해서는 아이들이 성장할 수 없다. 부모도 학교도 평생 온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없고, 성인인 우리 아이들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사고가 우려되어 내보내지 않고, 실수가 두려워 완벽하게 해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영원히 도전할 수 없다.
실수를 해도 괜찮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도 괜찮다. 문제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역시 공부다.
거리가 멀지 않고, 비용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며, 지하철로 돌아다닐 만한 여행지를 찾아 국내로는 부산, 해외로는 일본 오사카와 대만 타이베이를 선정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여행 정보가 잘 되어 있어서 좋다.
우선 학생들을 모아 세 여행지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해 보는 것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어른들은 미숙한 아이들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본인들의 경험에 비추어 더 나은 것들을 일방적으로 제공한다.
그렇지 않아도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많은 우리 아이들은, 타인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익숙해지면 더욱 자기결정력이 없어진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학생 중에는 식당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조차 고르지 못하던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되도록 외부활동에서도 단체로 식당을 예약해 통일된 메뉴를 먹는 것을 지양하고자 한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학생들이 원하는 식당을 그룹별로 고르고, 찾아가고, 메뉴를 선택하고, 각자 더치페이를 해서 계산한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늘 주어지는 대로 먹는 것이 익숙하던 아이는 식당의 수많은 메뉴 중에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주문하라는 말에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무얼 먹어야 하냐며 계속 교사에게 묻기만 했다. 무얼 골라도 괜찮으니, 네가 원하는 걸 고르라는 말에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다가 다른 친구들이 모두 주문하고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겨우 선택을 했다. 그 후로도 외부 식당이나 카페 이용이 있을 때마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그러던 아이는 지금 졸업을 하고, 당당한 요양보호사 보조로 병원에 취업을 하여, 주말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논다. 취업자 모임에 부모님 허락 없이 참석해 우리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여행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온전히 학생들의 선호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각자 원하는 곳을 고민해 본 뒤 부모님과 논의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선택하도록 안내했다.
영상의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가득해지는 것 같았다.
곧장 가고 싶은 곳을 말하는 아이도 있고, 아직 모르겠다고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느 곳으로 가게 될지, 내가 더 긴장되고 기대되었다.
과연,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