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도전하는 극한직업
발달장애 학생들과 프로젝트 수업은 사실, 쉽지는 않다.
일반적인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교사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든 활동을 스스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학생들의 능력 안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사는 강의식 수업보다 더 많은 것들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냥 여행지를 정하면 정해진 여행지 한 군데에 대해서만 준비하면 되는 것을, 부산, 오사카, 타이베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주기 위해서는 세 여행지 모두에 대해 사전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 중 어느 곳을 선택하더라도 갈 수 있도록, 어떻게 갈 것인지, 가서 볼만한 것과 먹거리들은 무엇이 있는지, 비용은 어느 정도 예상하는지, 주요 관광지의 이동경로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우리가 진짜 자유여행을 할 만한지 충분한 조사와 논의가 이루어져야 세 여행지 후보를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
일반 학생들은 이 과정부터 스스로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하면 유럽부터 미국까지 꿈은 크고 현실성은 없는 목표들을 마구잡이로 세우기 때문에, 적당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처음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했을 때에 교사들끼리 ‘진정한 프로젝트 수업 대상은 우리’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프로젝트 수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학생들에게 진짜 필요하고 의미가 있을만한 활동으로 수업을 구성하다 보면 우리도 비전문가인 활동에 도전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시대가 변하며 새롭게 맞닥뜨리는 과제도 생겼다.
캠핑, 농사, 자전거, 메타버스 등 우리도 대충 알긴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정도로 전문적이지 않은 분야를 시도하다 보니 사전에 교사들끼리 자료를 찾고 연구하고 수업을 구조화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매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나누다 보면, 프로젝트 수업이 목표로 하는 협력과 창의력, 주도성 등이 성장하고 있는 건 우리였다.
때론 내가 살면서 해 본 적 없고, 할 거라고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들을 아이들 때문에 하게 되기도 한다.
정말이지, 온갖 것을 다 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지속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언어, 수학, 컴퓨터, 인간관계 등 다양한 교과를 통합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화가 어려운 발달장애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의 교육만으로는 배움에 한계가 있다.
단순히 읽고 쓰고, 수 계산을 하고, 검색 방법을 배우고, 대인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다고 해서 그걸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실제 삶 속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하고, 그때그때 상황 속에서 해야 하는 것들을 배우고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프로젝트 수업을 무척 좋아한다.
경증의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학생들은 스무 살까지 성장하는 동안 또래와의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이 현저히 적다.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들보다 오히려 경계선급의 지적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부정적인 학창 시절의 경험과 자신의 장애수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우울, 조울,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매우 좋아하고, 학교를 다니며 상당히 변화하는데, 그 이유 중에 상당수는 자신과 대화가 통하고 눈높이가 맞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장애 또래와는 대등하게 어울리기 어렵고, 또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 속에 섞이기에도 어려웠던 아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은 귀하디 귀한 존재들이다.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긍정적인 경험들은, 학생들이 변화하는 데에 큰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지하철을 타고 춘천으로 첫 여행을 떠났을 때, 그리 멀지도 않은 당일치기 여행이었음에도 학생들은 가족들이 아닌 친구들끼리 처음 와본 여행이라며, 진짜 대학생이 된 기분이라고 무척 뿌듯해하고 기뻐했다.
매주 프로젝트 수업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애쓴 것보다 더 많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항상 힘을 얻는다.
졸업여행 역시 준비를 시작한 순간부터 아이들은 설레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눈치 없이 아무 때나 여행 이야기를 꺼내 선배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3년제이지만 학생들의 개인차를 고려하여 필요한 경우 졸업 이후에도 선택할 수 있는 인턴쉽 과정이 있는데, 지금 졸업여행을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을 하지 못하고 졸업한 인턴 1년 차 선배님들이다.
코로나와 함께 입학한 그 친구들은, 졸업 직전에 거리두기가 풀리며 곧장 제주도를 다녀오긴 했지만 3학년만이 아닌 전체 재학생이 함께였다. 마음은 모두 데려가고 싶지만, 의미 있게 자유여행을 준비하고 진행하려면 현재 이상의 대규모 인원참여는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졸업여행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선배들이 배 아프지 않도록 너무 자랑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 보지만 들뜨는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들뜬 마음만큼이나 빠르게 희망 여행지 취합이 완료되었다.
솔직히 국내로 갔으면 하는 마음과 해외를 갔으면 하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국내여행은 아무래도 부담이 덜하고, 학생들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기에 해외보다는 국내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터였다.
해외로 갔으면 하는 마음은, 친구들과 해외 자유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아이들 평생에 드물 것이며, 그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높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능력이 있는 학생들에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결과는 1위 오사카, 2위 타이베이로 과반수의 학생들이 오사카를 선택했다. 결과를 공지하자 타이베이를 선택한 학생 한 명이 볼멘소리를 한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일본 여행은 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러 친구들의 선택이 그런 걸 어쩌겠어."
우리 학교에서는 시사 따라잡기 수업을 하는데, 뉴스를 열심히 본 티를 팍팍 내는 친구였다. 기특했지만 결과는 바꿀 수 없는 것을 어쩌겠나. 그런 걸 감수할 만큼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기를 기대할 뿐.
여행지가 결정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본래 패키지로 생각했을 땐 날이 좋은 가을쯤 졸업여행을 예상했었는데, 자유여행으로 준비하려면 우리 아이들의 특성상 방학을 끼고 공백이 길어질 경우 배운 것들을 많이 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1학기 안에 여행을 다녀오자니 6, 7월의 일본은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올 수 있다 해서 5월 말로 날짜를 정했다.
두 달 후에 떠나려니 준비할 것이 태산이었다. 곧장 여권발급을 공지하고,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세대인 우리 아이들은 때로는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굣길에 정부24로 자신의 여권정보를 조회해 보았다며, 여권이 만료가 되어서 내일 여권을 갱신하러 가야겠다고 전화가 왔다. 방법을 친구들끼리 공유했는지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도 검색을 해보니 신규 발급은 직접 가야 하지만 갱신신청은 사진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가능하단다. 다시 전화를 해서 인터넷으로도 신청할 수 있으니 우선 시도해 보고, 어려우면 학교에서 도와줄 테니 내일 보자고 했다.
다음날 등교를 한 아이는 자랑스럽게, 이미 신청을 완료해서 여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부모님이 여권을 만들러 갈 시간이 없다며 걱정을 했는데, 혼자서 발급받으러 다녀왔다며 놀라워하셨다.
못 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주어지지 않은 기회가 많아서 그렇지, 때로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은 해외 자유여행이지만 분명 우리 아이들은 기대 이상의 능력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슬슬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