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학생들이 발달장애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오사카는 근교에 하루이틀 시간을 내어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많다.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 사슴 공원이 있는 나라, 소고기가 유명한 항구도시 고베 등.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오사카의 관광지는 3~4일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하루는 당일치기로 교토투어를 다녀오기로 했다.
교토를 하루 안에 둘러보려면 이동거리가 길어 대중교통보다는 현지투어를 이용하는 게 낫겠다 싶어 버스투어를 계획했다.
항공, 숙박부터 모든 여정을 함께 하는 패키지와 달리 현지투어는 원하는 날, 원하는 곳만 이용할 수 있어 자유여행을 하면서도 패키지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전문 가이드의 설명이 있으면 좋은 곳이나 대중교통 이동이 불편한 곳, 핵심 관광지 몇 군데만 돌아보고 싶을 때 이용하면 좋다.
인원이 적으면 다른 여행객들과 동반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우리끼리 다닐 수 있는 프라이빗 투어를 찾았다. 프라이빗 투어는 대부분 원하는 장소에서 픽업과 드랍을 해주고 일정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몇 군데에 견적을 문의해 보니 우리 인원이면 프라이빗 투어도 일반 버스투어와 1-2만 원 밖에 가격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예약을 확정하기 전 혹시나 추후에 문제가 될까 싶어 발달장애 학생들임을 알렸다.
“그런데 저희 학생들이 발달장애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혹시나 싶어 말씀드립니다.“
실은 당연히 괜찮아야 할 일이고, 굳이 말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차별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피해를 입고 상처를 받는 건 우리 아이들이니까.
머지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전혀요^^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시원시원한 그 답변이, 당연한 일인데도 참 고마웠다. 동시에 견적을 문의하던 다른 투어 회사도, 버스 승하차를 위해 휠체어가 있는지만 확인했을 뿐 비용 등 이용 조건에는 달라질 게 없다고 했다.
졸업여행 준비 전 패키지여행을 문의한 여행사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에 곤란해하며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었다. 물론 전체 일정을 책임져야 하는 패키지 여행사와 하루 당일투어만 책임지는 현지투어의 입장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에 수없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 그저 모두 똑같은 카테고리로 묶여 일반화되고 차별이 합리화되는 걸 보면 참 우리 사회의 인식이 아직 멀었구나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 아이들을 설명할 때 개인이 가진 여러 특성을 모두 미루어둔 채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속상한 일이다.
사실 ‘장애’는 그 사람이 가진 수많은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다.
타고난 기질, 가정환경, 교육, 자라면서 겪은 경험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이 한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장애 역시 그중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물론 장애로 인해 갖는 비슷한 특성은 있으나 그조차 모두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정기상담을 하는데, 단순히 교과별 학습이나 태도 정도만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수업 및 학교생활, 기숙사, 외부 활동 등에서 보이는 모습을 공유해 영역별 인지능력, 태도, 기능, 신체능력, 심리, 대인관계, 자기관리 등 학생들의 전체 모습을 평가하고 교육방법을 고민한다.
상담이 있는 몇 주는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할 만큼 어려운 시간이다.
십여 년간 수백 명의 학생들의 지도계획서를 작성하며 교사들끼리 매년 하는 말은, ‘똑같이 쓸 수 있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이다.
진단명은 대부분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로 똑같이 쓰여있는 아이들이지만 개개인을 마주하면 제각각 너무나 다른 아이들이다. 한두 문장 정도는 똑같이 쓸 수 있는 아이들은 있어도 전체를 똑같이 쓸 수 있는 아이들은,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유전적인 요인으로 ‘증후군Syndrome’이라는 진단명이 붙은 아이들조차 하나하나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수백 명의 발달장애를 겪어 온 우리는 그들의 능력을 함부로 단정 짓지 못하는데, 고작해야 손에 꼽을 만큼의 장애인을 겪어 왔을 이들은 어찌나 쉽게 그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지 참 웃긴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층의 문제는 개인의 특성으로 치부되는 반면, 소수자의 문제는 쉽게 전체의 문제로 치환된다.
적당한 직업을 가진, 건장한 청년이 여행지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큰 민폐를 끼친다고 해서 여행사에서 해당 직업, 나이, 성별 등을 전부 거부한다거나 추가비용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진상 손님 한 명을 만났구나, 정도로 끝이 난다.
하지만 어떤 특성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 특성을 가진 그룹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배제시키게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외부 활동을 할 때면, 나는 평소보다 공공질서나 매너 등을 더 깐깐하게 지도한다. 남들도 이 정도는 하니 우리도 괜찮겠거니 할 수는 없다.
그저 개인이나 교육의 문제로 치부될 그들과 달리 우리 아이들의 행동은 전체 ‘장애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차별을 정당화하고 편견을 공고화시키는 데 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에 빗대어 타인을 한두 가지 단어로 정의하고 평가하는 게 얼마나 편협하고 식견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인지, 꼭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는 생각지도 않았던 해외 자유여행에 도전하게 되었고, 패키지에서는 하지 못했을 귀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여행 3일 차 오전 9시, 교토투어
교토투어 일정은 오전 9시 숙소 픽업으로 시작해 오후 6시 소라니와 온천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아침식사를 사 와 해결하는 동안 투어버스가 이르게 도착했다.
오사카에서는 USJ, 수족관, 쇼핑 등을 즐기기 때문에 교토는 좀 더 일본 전통의 느낌이 나는 관광지로 사전에 요청을 했고, 아라시야마-니넨자카, 산네자카, 청수사-후시미이나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가이드는 미리 여행 일정을 브리핑하며 점심식사에 대해 물었다. 아라시야마와 청수사 일정 사이에 점심시간이 있는데, 어느 쪽에서 식사를 하겠느냐고.
아라시야마에서는 단체식사가 어려운 대신 맛집 몇 군데를 추천해줄 수 있으니 원하는대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고 모이면 된다고 했고, 청수사에서는 단체식당을 예약해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단체식당이 편하시겠죠?”
가이드는 우리를 배려하며 제안했으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라시야마에서 개별식사를 택했다.
괜찮겠냐는 가이드의 확인에도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괜찮다고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첫 코스인 아라시야마는 가쓰라강을 가로지르는 155m의 도게츠교, 대나무숲 등이 유명한 곳이다. 벚꽃과 단풍이 아름답기로 일본에서도 손꼽힌다는데, 계절은 안 맞았지만 푸른 나무와 볕이 반짝이는 강만으로도 충분히 예뻤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본 후에 원하는 메뉴에 따라 그룹별로 흩어져 식사를 했다. 투어의 좋은 점은 가이드가 메뉴별 맛집들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라시야마 맛집만 소개받았지만 물어보면 다른 지역 맛집이나 쇼핑팁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여행 중 현지투어를 이용하려면 일정의 초반부에 가는 게 여행 전반의 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역시 시간이다. 교토투어 업체들을 찾아보면 보통 우리 일정에 금각사 등을 더 넣어 네다섯 군데를 둘러본다. 우리는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름 코스를 추렸음에도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고, 식사를 하고 커피,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들을 하나씩 사고 나니 어느새 다음 코스로 떠날 시간이었다.
두 번째 코스는 산넨자카, 니넨자카 거리. 일본의 경주와 같은 곳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로 미어터질 것 같았다.
산넨자카, 니넨자카는 청수사로 가는 길목으로, 일본 전통 건물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어 누가 봐도 일본이라는 느낌이 확 난다.
청수사는 기요즈미데라라고 불리는, 오래된 사찰인데 꽤 높은 곳에 있어 올라가면 전통적인 거리와 함께 교토타워까지 볼 수 있다. 옛날과 현대의 건물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곳.
아이들이 사찰 관람보다 상점가 구경을 원해서 청수사는 바깥만 구경하고 다시 내려오며 이곳저곳 구경을 했다.
마지막 코스는 붉은 도리이로 유명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로 유명해졌다는 신사는 상업의 신을 모시는 곳이라 많은 도리이들이 기업 후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 신앙의 구심점 같은 곳이라 하며, 붉은 기둥이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긴 했으나 종교가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그냥 사진 찍기 좋아 유명해진 곳 같았다.
시간도 많지 않았고, 이후에 고대하던 온천에 가야 했으므로 차라리 빨리 이동하는 게 낫겠다 싶어 우리는 인증샷만 찍고 돌아 나왔다.
그렇게 교토투어를 마치고 다시 오사카로 향했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멋진 풍경을 발견하는 것도, 기대했던 곳에서 실망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저 따르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