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J를 즐기는 우리만의 방법
여행 2일 차 온종일,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우리가 USJ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무렵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예매한 티켓을 실물티켓으로 바꿔야 했다. 어찌어찌 장애할인 티켓을 결제하긴 했으나 한국의 복지카드도 할인적용이 되는지 확신할 수 없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표소에 갔다.
개장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대기줄은 꽤 남아있어서 이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티켓을 교환했다. 준비해 간 영문 장애인증명서를 살펴보며 직원들끼리 묻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까지 한 끝에 문제없이 할인된 금액으로 입장권을 교환할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 뺨치는 쇄국정책을 뚫고 무수한 결제 시도 끝에 얻은 결과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아 몹시 기뻤다.
티켓을 받은 후에는 짐 검사를 하는 데에 또 십여 분이 걸렸다.
USJ는 안전을 위해 반입이 금지되는 물품 외에도 음식물이나 음료의 반입도 금지한다. 이유식이나 어린이용 간식, 1인당 1개 500ml 이하 음료 외에는 전부 반입금지다.
운영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야 나름의 이유가 있어 정한 규정일 테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니 내부에서 파는 식사와 간식의 금액이 너무 비싸서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장권도 비싼데 식사는 햄버거 세트만 먹어도 2,000엔이 너끈하게 들었고, 추로스 하나만 사도 600엔이었다. 가격이 비싸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냥 사는 수밖에.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드디어 USJ에 입장, 원하는 친구들과 조를 구성하여 흩어지기로 했다.
활동조를 나눌 때에는 활동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한다. 학생들의 결정에 맡기기도 하고, 성향을 고려하여 조를 짜주기도 하고, 무작위로 정하기도 한다.
이번 오사카 자유여행의 전체 조는 리더역할을 할 수 있는 조장을 투표로 선정하고, 희망하는 조장을 따라 조를 나눴다. 해외여행인지라 교사 없이 아이들끼리만 다니는 자치조를 구성하기는 어려웠고, 길 찾기든 의사소통이든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아이들이 각 조마다 분배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장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여행 내내 교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휴대폰만 보며 걷는 것이 불가능한 교사들을 대신 해 앞장 서 길을 찾았고, 제각각 욕구가 달라 개별행동을 해야 할 때 나누어진 그룹의 또다른 인솔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늘 도움을 받기만 하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데에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 주문, 결제, 길 찾기 등이 서툰 친구들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면, 아이들은 선뜻 수락을 하고 미션을 완수한 후에는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지만 놀이공원은 상대적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더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아이들의 선호대로 조를 재구성했다.
조를 나누고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단박에 눈에 들어오는 곳은 USJ의 수많은 기념품들이 쌓여있는 가게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띠와 의상 등으로 꾸민 관광객들을 보고 아이들은 홀린 듯 기념품점부터 입성했다.
“이거 살래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3초 컷으로 머리띠를 집어드는 아이에게 설명했다.
“여기는 기념품이 엄청 많으니까 좀 더 둘러보고 신중하게 선택해. 원하는 걸 다 살 순 없어. 네가 정한 예산으로 여기서 고를 수 있는 건 하나야. 지금 그걸 사면 다른 건 더 살 수 없는데, 그래도 괜찮겠어?”
캐릭터가 달린 머리띠는 한 개에 2,600엔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품이 머리띠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비쌌다. 만원 안팎의 에버랜드 머리띠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 두 배가 넘는 기념품은 과소비로 느껴졌으나 즐거운 추억의 값으로 하나쯤은 봐줄 만했다.
흥분해서 이것도 저것도 다 사겠다며 들고 오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설명하고, 하나씩만 고를 것을 주문했다. 더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겠지만 아이들은 순순히 납득하고 기념품을 골랐다.
아마 3년 간의 경험으로 여기서 고집을 부려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며, 되려 신나는 졸업여행을 망칠 수도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1학년 입학 초기에는 각종 문제행동을 드러내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을 알고 난 후에는, 많은 아이들이 놀랍도록 행동을 바꾸곤 한다. 문제행동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잃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변화의 시간은 차이가 있지만 온전한 사랑과 일관된 교육만 제공한다면 아이들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미니언즈, 마리오와 마리지 등 여러 캐릭터 상품을 아이들은 하나씩 구매했다. 좀 더 살펴보고 이따가 사겠다며 선택을 보류한 아이도 있었다.
이미 머리띠 하나를 사고 또 다른 인형이 마음에 든 아이는 인형과 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교수님, 사고 싶은데 꾹 참았어요!“
‘이것도 사게 해주세요’의 반어법일 테지만 모른 척 폭풍칭찬을 날렸다.
“잘했네, 잘했어.”
그 이후로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사고 싶은데 꾹 참았어요’를 수십 번은 더 들었다. 사고 싶은 게 어찌나 많던지, 아직 소비습관을 개선하려면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그 모습이 기특했다.
그토록 사고 싶어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소비로 채워지는 욕구는 잠깐이고, 지금 아이에게 더 필요한 건 인내와 절제를 배우는 것이므로, 나 역시 흔들리는 마음을 꾹 참았다.
또 다른 한 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만 다셨다. 슬프게도, 숙소에 지갑을 놓고 온 아이였다. 어쩌다 한 번 실수라면 도움을 주었을 텐데, 평소에도 워낙 제 물건을 아무 데나 던져두기 일쑤인 아이였다.
인천공항에서도, 간사이공항에서도 지갑과 가방을 빈자리에 놓고 돌아다녀 주의를 주었고, 출발 전 당부에도 다 챙겼다며 확인 없이 대답만 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식사를 거를 수는 없으니 밥값은 빌려준다. 그렇지만 다른 간식이나 기념품을 살 돈은 빌려줄 수 없어. 지갑을 잘 챙기지 않으면 이렇게 쓰고 싶을 때 못 쓰고 아쉬운 거야.“
종일 여러 기념품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버터맥주며 아이스크림이며 간식을 사 먹는 친구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마다 다시금 짚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게 지갑을 잘 챙겼더라면 기념품도 사고, 간식도 실 수 있었을 텐데.“
한 번의 경험으로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는 다음날부터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 가방과 지갑을 흘리는 일 없이 잘 챙겨 다녔다.
USJ는 마음껏 즐기면 인당 4-50만 원은 우습게 들 것 같았다. 우선 티켓값에 익스프레스 패스나 닌텐도 월드 확약권을 사면 15만 원이 거뜬했다.
달랑 입장권만 사서 간 우리는 한바탕 쇼핑에 정신이 팔렸다가 12시가 다 되어 USJ 어플로 e정리권을 신청했다. 사람이 많으면 추첨으로 입장시키는 경우도 있다는데 다행히 뒤늦게 신청했음에도 5시 10분 입장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놀이기구도 대부분 20분 내외, 길면 50분 정도를 기다려 탈 수 있었다. 마감시간까지 놀기로 한 데다 대기공간도 잘 꾸며져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나 기다리기 어려운 사람들은 비용을 더 내고 익스프레스 티켓을 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단위로 오면 돈 백만 원은 순식간에 깨질 것 같았다.
게다가 어렵게 들어간 닌텐도 월드도 전부 즐기려면 4,200엔짜리 파워업 밴드를 또 사야 했고, USJ 필수코스인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5,500엔짜리 마법 지팡이를 사야 곳곳에 설치된 마법을 체험할 수 있었다. 팝콘도 그냥 팝콘만 사면 550엔인데 별 모양 슈퍼스타 팝콘통을 사면 3,900엔으로 마법 같이 가격이 뛰었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기념품을 한두 개 사고, 놀이기구를 타는 것만으로도 한껏 신이 났다. 버터맥주를 살 땐 진짜 맥주인 양 폼을 잡아댔다.
한 아이는 해리포터 지팡이를 사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진지하게 충고까지 했다.
“야, 잘 생각해 봐. 이거 밖에 나가면 또 쓸 것 같아?”
다른 친구들이 다 캐릭터 머리띠를 살 때 홀로 손수건을 고른 아이의 소신 있는 기준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해리포터 지팡이와 닌텐도 파워업 밴드를 사고파는 중고거래가 무척 활성화되어 있었다.
현명한 소비와 환경보호를 위해 요즘은 중고거래도 많이 하니, 다음에 또 USJ를 가게 되면 아이들과 중고거래를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만의 방법으로 알차게 USJ를 그날의 마감시간까지 즐겼다. 티켓 할인을 무사히 적용받아 아낀 금액으로는 아이들 저녁 식비를 지원했다.
다들 우리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는지 주변 식당에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그래도 오랜 기다림 끝에 먹는 식사는 꿀맛이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탔다. 카카오 T가 일본에서 된다 하여 준비했었으나 지원지역이 아니라며 쓸 수 없었다. 다행히 유니버셜 스튜디오 역 앞에 택시 십여 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 다른 방안을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택시마다 교사가 동행할 수 없어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의사소통이 용이한 아이들로 두 그룹을 먼저 꾸렸다. 구글지도에 숙소 위치를 찍어주고, 택시 기사에게 한 번 더 당부도 한 뒤에, 한 명이 우선 결제하여 영수증을 받아오도록 했다.
여섯 대의 택시가 무탈하게 숙소에 도착을 했을 땐 9시가 훌쩍 넘었다. 한 명씩 씻는 사이 그룹별로 택시비를 정산하고 가계부를 기록했다. 모두 잠자리에 든 건 11시 무렵이었다.
하루종일 걷고 서 있던 탓에 다리가 천근만근이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아쉬운 점도 많은 USJ였으나 신나는 여운이 가시질 않고 내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아쉬움은 사그라들고 덩달아 행복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