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보다 중요한 경제관념
우리가 정한 오사카의 숙소는 오사카코(오사카항) 역 5분 거리에 위치한 4층짜리 아파트형 숙소다.
보통 오사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난바, 도톤보리 등 시내 근처 호텔을 주로 이용하는데 우리가 이 숙소를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2인 1실로 사용하는 호텔 방보다 건물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형 숙소가 19명의 학생들을 관리하기에 훨씬 용이하다. 방은 분리되어 있으면서 거실 등 공용공간이 있어 모임을 하기에도 좋고, 짐 정리 등을 점검하기에도 좋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기에도 좋았다.
둘째, 시내와는 2~30분 거리가 있으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관광지인 덴포잔 대관람차, 가이유칸 수족관이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도 가까우며, 소라니와 온천도 환승 없이 지하철 한 번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셋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로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하다. 자유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동방법, 특히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밖에 없는 공항까지의 교통수단이 제일 신경 쓰이는 일인데 리무진 버스 한 번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예매 때부터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사람이 많으면 원하는 시간 대에 버스를 탈 수 없을까 봐 우려를 했었는데 여행객들이 많이 머무는 지역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행히 오갈 때 모두 한 번에 리무진을 탈 수 있었다.
넷째, 비슷한 퀄리티의 호텔보다 숙박비가 훨씬 저렴하다. 호텔처럼 청소 등의 서비스나 부대시설이 없는 대신 숙박비가 저렴한 게 아파트형 숙소들의 장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현지의 생활방식과 특징들이 묻어나는 숙소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여행 온 느낌을 더할 수 있어 에어비앤비나 아파트형 숙소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우리 숙소도 침대방과 일본식 다다미방이 혼합되어 있어 외국이라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물론 단점도 있다.
가장 불편한 건 우선 화장실과 욕실. 일본은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음 예약 사이트에서 안내된 내용으로는 화장실 3개, 욕실 4개가 있다고 되어 있어 인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지라 불편을 예상했다.
그래도 다른 장점이 많은 데다 숙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거의 없고, 또 하루는 온천에서 씻고 오면 되기에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나마 도착해서 보니 화장실 4개, 욕실 4개로 층마다 하나씩은 있어 예상보다 상황이 나았다.
호텔과 달리 조식이 없는 것도 단점이나 근처 1분 거리에 큰 편의점이 있었다. 일본은 추천 음식이나 쇼핑 목록에 편의점 목록이 따로 있을 만큼 편의점 문화가 잘 되어 있다. 선택지도 다양하고 품질도 좋아 아침식사는 편의점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골라 해결하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했다.
그 밖에도 청결함이 다소 아쉽고, 계단과 복도가 좁고,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너무 열심히들 논 덕분인지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져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가격, 위치, 룸컨디션, 서비스 등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중요한 조건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비교하여 각자의 상황에서 적당한 숙소를 고르는 것이 여행의 요령이고, 그런 의미에서 오사카의 숙소는 우리의 여행과 꽤 잘 맞는 숙소였다.
여행 1일 차 오후 5시, 덴포잔 마켓플레이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짧은 휴식시간을 가진 뒤 첫 일정인 덴포잔 대관람차를 향해 출발했다.
“교수님, 비 온대요! 얘들아, 우산 챙겨! 비 온다!“
오사카에 오기 전부터 시사 등 수업 시간을 통해 날씨를 확인했는데 비 예보가 있었다. 그걸 잊지 않고 실시간 날씨를 확인하던 아이가 숙소를 나서기 전 요란하게 우리를 닦달했다. 실제로 하늘에도 먹구름이 끼어 있어 우산과 우비를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섰다.
우리가 내렸던 리무진 버스 정류장이 대관람차 앞에 있었고, 또 숙소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큰 대관람차였기에 아이들은 쉽게 길을 찾았다.
덴포잔 대관람차는 높이가 112.5m나 되고, 60대의 곤돌라가 한 바퀴를 도는데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오사카 주유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나 우리는 사지 않았기 때문에 티켓팅을 해야 했다.
매표소에 보니 장애인 할인권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 간 영문 장애인증명서를 내밀었다. 서류를 잠시 살펴보던 직원은 할인이 가능하다고 했고, 동반인까지 포함해 전체 티켓을 반값에 살 수 있었다. 험난한 인증의 산을 넘어 서류를 발급해 온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할인권은 카드결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비상금으로 마련한 현금을 몽땅 털어야 했다. 이후로도 일본은 큰 가게나 관광지에서도 현금만 되는 경우가 꽤 많았고, 영수증도 우리나라 시골 구멍가게에서나 봄직한 간이영수증을 수기로 작성해 주는 곳이 종종 있어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현금은 거의 사라지고 카드나 각종 페이들이 널리 쓰이는 우리나라에 익숙해져 있다가 오랜만에 느끼는 아날로그의 정취(?)였다.
대관람차는 이날 21시까지 운영하였기에 좀 더 어두워진 후에 야경을 즐기기로 하고, 저녁식사를 먼저 했다.
대관람차 바로 옆에는 덴포잔 마켓 플레이스가 있었다. 여러 식당과 가게 뿐 아니라 1960년대 옛 오사카 거리 풍경을 재현한 테마 거리가 있어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기에도 좋았다.
조별로 흩어져 구경도 하고 원하는 식당을 찾아 식사를 했다. 초밥, 덮밥, 야끼소바, 오므라이스 등 다양한 식당들이 근거리에 모여있어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기가 좋았다.
해외에서는 먹거리를 고르는 일도 쉽지는 않다. 일식은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많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메뉴를 대하면 선뜻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면, 새롭고 해보지 않은 경험보다는 익숙하고 이미 경험해 본 것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냥 타인의 선택을 따라가거나.
비장애인들은 보고 들은 간접경험들을 바탕으로 선택하거나 재료 등을 근거로 대충 상상하고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아이들은 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경험이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삶도 풍요로워진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마켓 플레이스부터 대관람차까지는 거리가 짧고 지붕이 있는 공간이 많았고, 대관람차에서 내렸을 때는 비가 거의 그쳐 있었다. 대관람차 안에서 풍경을 볼 때는 유리에 습기가 차 밖이 선명히 보이지 않는 게 다소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비 오는 풍경의 운치가 있었다.
대관람차를 탄 후에는 타코야끼, 아이스크림 등 간식도 즐기고, 편의점에서 아침식사 거리도 사 들도 숙소로 돌아왔다.
카드가 있으니 확실히 계산이 편했다. 한국 돈도 잘 못 세는 아이들이 일본 돈을 세서 지불하려면 아주 많은 도움을 필요로 했을 텐데, 각자 카드를 갖고 있으니 주문과 결제가 편했다.
하지만 돈을 계산하는 교육은 덜 중요해졌어도, 돈을 관리하는 교육은 더 중요해졌다. 현금은 눈앞에서 줄어드는 게 보이니 얼마나 사용했고 얼마가 남았는지 비교적 와닿지만 카드는 실제적으로 지출을 체감하기 어렵다.
실제로 오사카에 도착하기 무섭게 공항에서 매니큐어를 300엔 가량 구매하고, 또 그걸 지우겠다며 이튿날 아세톤과 화장솜을 1,400엔 가량 사 온 아이가 있었다.
평상시 용돈이야 없을 땐 안 쓰면 그만이지만 이 여행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최소한의 식비는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계획적인 소비가 반드시 필요했다. 무분별한 용돈 사용에 대해 주의를 주자 아이는 태평하게 말했다.
“엄마한테 충전해 달라고 하면 돼요.”
“…안 돼. 정해온 예산 안에서 잘 조절해서 써야 해. 함부로 써서 모자라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거야.”
물론 언제든 충전해서 간편하게 환전할 수 있는 게 트래블월렛 카드의 장점이고, 그래서 만들어 왔지만 그건 비상상황의 대비책이지 절제 없는 과소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소비를 점검하고 남은 돈을 사용하는 데 주의사항을 주지 시키기 위해 매일 밤마다 스마트폰 어플을 활용해 용돈 사용을 기록하도록 지도했다.
트래블월렛 카드의 또 다른 장점은 어플의 메뉴가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금융기관의 여러 서비스가 다양하게 나열돼 복잡한 다른 카드 어플과 달리 해외사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알기 쉽고 편리했다. 다른 은행이나 카드사들도 어플도 이 정도로 직관적이라면, 어려워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결 줄어들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메인 화면에 충전하기, 이용내역만 딱 있어 쉽게 결제한 내역을 확인하고 가계부에 기록할 수 있었다. 현금을 사용할 땐 영수증을 받거나 가격을 사진 찍어오도록 했다.
트리플 어플의 가계부도 사용법이 어렵지 않아 절반 정도의 아이들은 몇 번 연습하고 지도하자 이튿날부터는 스스로 가계부 작성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의 기쁨 덕인지 필요성을 느낀 덕인지,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지출을 하자마자 성실하게 가계부를 기록했다.
아이들과 사전에 정한 예산은 점심, 저녁 식비에 1,500엔씩, 아침은 500엔, 간식과 쇼핑은 각자 다르지만 총 10~20만 원 정도였다. 되도록 예산 안에서 소비하고, 만약 한 끼 식비가 부득이하게 예산을 넘기면 다음 식사 때는 그만큼 지출을 줄여야 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교사들은 매일 남은 현금과 카드 잔액을 확인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주의사항들을 주지 시켰다.
여행에 지쳐 피곤한 몸으로, 여러 아이들의 가계부와 용돈을 일일이 점검하자니 귀찮은 마음도 들었으나 진짜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니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물질이 꼭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평생 보호하고 능력이 닿는 모든 것들을 해주고 싶은 게 부모님의 마음이겠으나 삶은 준비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고 아이들에게는 자립을 위한 삶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계획적으로 소비하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욕구를 절제할 줄 알고, 누리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진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다.
여행에서 배운 것들이 여행과 함께 끝나지 않도록,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학교 안에서만 그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짜 삶에 필요한 교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나누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