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극한직업 Jun 13. 2023

편의점에서 준비하는 아침 식사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으로 가는 길

여행 2일 차 오전 6시, 숙소


오사카에서의 첫 아침.

들뜬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아파트형의 숙소는 별도의 조식이 없는터라 전날 편의점에서 각자 사 온 빵, 컵라면, 샐러드, 도시락 등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일본의 편의점은 워낙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있어 고르는 재미가 있었고, 제각각 조리법이 달라 아침부터 또 다른 공부가 시작되었다.

선택한 메뉴에 따라 그냥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하는 것,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하는 것, 뜨거운 물을 부었다가 따라내야 하는 것 등 종류가 다양했다.


요리는 삶에 필수적인 기술 중 하나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때에 따라 요리를 정규 수업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캠핑, 농사 등 프로젝트 수업과 연계하여 진행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요리를 하려면 레시피를 조사하고, 장 볼 목록을 정하고, 비용을 계산하고, 재료를 구입하는 등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도 1-2인분으로 나와있는 재료의 양을 인원수에 따라 계산하고, 또 마트의 포장 단위로 바꾸는 일 등은 쉽지 않았다. 초보자가, 시간 내로 할 수 있는 요리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밀키트나 간편조리식품이 급격하게 유행하며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도 보다 쉽게, 더 다양한 요리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실제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이쪽이 훨씬 높은지라 몇 년 전부터는 밀키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물론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에겐 밀키트도 배우지 않고는 혼자 하기 어렵다. 레시피를 읽고, 사용되는 용어의 의미를 알고, 순서와 시간을 지켜 조리하고, 쓰레기의 종류에 따라 분리배출을 하고, 뒷정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에도 모두 교육이 필요하다.


컵라면 정도는 죄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해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속속 발생한다.

일단 적혀 있는 조리방법부터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용기, 개봉, 식용 등 일상적인 대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이 나열되어 있고, 물의 양이나 시간 등을 계산하는 일도 어렵다.

미지근한 물을 붓거나 덜 익은 면을 먹는 건 예삿일이다. 컵라면 뚜껑을 반만 뜯는 것, 스프를 쏟아지지 않게 찢고 탈탈 털어 넣는 것, 희미한 선을 보며 물의 양을 맞추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그냥 하게 되는 많은 것들에 우리 아이들은 세심한 교육과 반복적인 연습을 필요로 한다.
자립생활을 위한 '나혼자산다' 프로젝트 활동지

분주한 아침, 시간에 쫓기면 일일이 지도하기 어려우나 자유여행인지라 정해진 일정에 쫓기지 않고 우리의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바쁜 일상 중에는 서툴고 느린 아이들이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주기가 쉽지 않다. 급한 마음에 대신해 주는 것이 습관화되면, 어느 순간 아이들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당연해지며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조차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실수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시도하고 할 수 있는 영역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일찌감치 배가 고프다며 공용 공간으로 내려온 아이들부터 차례차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간단한 조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정리하는 것까지 모두 각자가 해야 하는 몫이었다.

다만 다소 아쉬운 점은 조리법이 일어로 쓰여 있다 보니 방법을 파악하는 데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했고, 숙소의 전자레인지가 레버를 돌리는 옛날 방식이라 아이들이 조리시간을 설정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시간 조절이 어려웠던 옛날(?) 전자레인지

그래도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거나 여럿이 역할을 나누어 일부만 하던 다른 때와 달리 각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몫을 책임진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음식을 선택한 덕분인지 -아침식사로 부적절한 메뉴나 양을 골라 약간의 조정을 거친 학생들은 있으나- 모두들 만족스럽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둘째 날의 일정은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던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USJ)이었다.

이 숙소를 택한 이유 중 하나도 USJ에서 ‘캡틴라인’이라는 배로 10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었다. 단 운영시간이 날마다 유동적이었고, USJ 마감시간만큼 늦게까지 운영을 하지는 않아 갈 때는 배를 타고 올 때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로 오는 방법도 있지만 항구 옆으로 빙 돌다 보니 2번이나 환승을 해야 했다. 비용은 400엔 정도로 저렴하지만 택시의 예상비용도 약 2,000엔이라 4명으로 나누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택시는 다리를 건너 10분 만에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배 시간에 맞춰 일찍 돌아오는 방법도 있었으나 아이들은 그 제안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사실 USJ 일정은 여행 전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였다. 유튜브나 블로그, 카페를 보면 각종 USJ 이용팁들이 즐비했다. 놀이기구 종류부터 타는 순서, 사야 하는 간식과 물품까지 팁이 너무 많아서 다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나 입장권부터 무슨 종류가 그리 많고 가격이 천차만별인지, 구매부터 골머리를 앓았었다.

여러 사람들의 공통적인 조언은,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놀이기구를 우선 탑승할 수 있는 익스프레스 티켓이나 닌텐도 월드의 입장을 보장해 주는 확약권을 구입하라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면 개장 전에 도착해서 오픈런을 하거나 더 빨리 입장할 수 있는 얼리파크인을 구매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입장권만 8만 원(시즌마다 다름) 가량인데 익스프레스나 닌텐도 확약권을 구입하면 약 두 배로 비용이 훌쩍 뛰었다. 다 함께 오픈런을 하는 것도 무리였다. 19명의 아이들과 준비를 하다 보면 아무리 서둘러도 한계가 있다.


고민 끝에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가는 날이 그나마 덜 붐비는 A시즌이라는 점에 희망을 걸고 그냥 입장권만 구입해 가기로 했다.

무얼 해줘도 우리가 준 것 이상으로 즐거워해주는 아이들이라는 점도 용감한 선택의 이유였다. 아이들과의 행사가 힘들고 손이 많이 감에도 매번 다양한 활동을 고민하고 추진하게 되는 데에는, 애쓴 것 이상으로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있고 그 덕분에 나 역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여행을 준비하며 놀이공원 영상만 보고도 놀이기구를 탄 것 마냥 신나 했었다. 놀이기구 몇 개쯤 덜 탄다고 쉬이 없어질 흥이 아니었다.


인터넷 정보들은 자유여행에 꼼꼼한 조력자가 되어주지만 같은 경험에서도 느끼는 것들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개인의 상황과 취향에 따라 남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행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무작정 좇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 진짜 '내 것'이 많이 쌓여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여행 2일 차 오전 10시, 캡틴라인 유람선


그래서 우리는 유유자적, 남들은 오픈런을 하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10:30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캡틴라인 페리를 타는 ‘가이유칸 서쪽 부두’까지는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구글지도를 손에 꼭 쥔 아이들이 날듯한 걸음으로 앞장섰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었고, 도착한 승선장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기 맞아? 문을 닫았는데?”

10시 10분경, 문을 열지 않아 우리를 당황케 한 캡틴라인 매표소

10시가 넘었는데 문이 닫힌 매표소는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우리보다 먼저 와 앉아있는 외국인 두 명만이 한 줄기 위안이었다.


“주변에 다른 매표소나 직원이 있나 찾아볼래?”


확인차 캡틴라인 홈페이지에 접속하며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었다. 여행 이틀차, 티켓팅을 위해 앞장선 나의 곁에 있는 선두그룹 아이들은 든든한 조력자였다.


“여기, 안내문이 있어요! 첫 차 출발 15분 전에 연대요!“

파파고가 번역해준 매표소 안내문

번역어플로 매표소의 안내문을 찍어보던 아이가 소리쳤다. 전날 편의점에서도 먹거리의 글자를 하나하나 번역해 가며 신중하게 살 것을 고르더니 금세 어플활용에 익숙해진 아이였다.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두 달여 간 여행을 준비한 시간을 보다 보람된 기억으로 남게 해 주었다.

위대한 발견을 칭찬해 주자 몇몇 아이들이 따라서 안내문을 번역해 보고는 그 말이 맞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매표소는 안내대로 15분 전에 열렸고, 티켓은 이번에도 현금 결제만 가능했으며 간이영수증을 받았다. 빠른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문화였으나 이 또한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나는 해외여행에서 예쁜 풍경과 관광지도 좋아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알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나의 일상 속에서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들이 어딘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시금 내가 타인이나 우리 아이들에게 들이댔던 잣대들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문화에 맞닥뜨렸을 때, 어쩌면 진짜 ‘문제’는 그들이 가진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사회가 가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무작정 사회의 기준이 바뀌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 계속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교육할 테지만, 우리 사회도 좀 더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포용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행에서 느낀다.


어쨌든 그렇게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가는 배에 올랐다.

승선 시간은 짧았지만 아이들은 배 또한 관광지인양 즐거워했고, 2층에 올라가 바람을 쐬고 사진을 찍자 금세 유니버셜 시티 포트에 도착했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으로의 입성이었다.

이전 03화 여행으로 배우는 삶의 교육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