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학생들에게 '친구'가 갖는 의미
아이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친구들과 함께’라는 것이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해외여행을 몇 번 가본 아이들, 심지어 오사카를 가본 적이 있는 아이들도 하나같이 졸업여행을 기대하는 이유는 '친구와 가는 해외여행'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또래의 ‘친구’가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우리 학교는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를 가진 성인, 그중에서도 경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시험을 통해 선발하여 교육한다.
미디어에 주로 비치는 발달장애는 다운증후군이나 자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말, 외모만 보아도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티가 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학교에는 그냥 보아서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만한 아이들이 많다. 아예 장애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가족을 제외한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장애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단순하게 심한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보다 적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여겨지며, 덜 주목되어 왔지만 실제로 내가 겪은 아이들은 비장애와 장애의 경계선에서 특별한 요구와 어려움들을 지니고 있다.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하여 Better Person을 만들기 위한 교양학부‘의 1년 과정과 ’ 직업능력을 갖춘 전문보조인력을 양성하는 전공학부‘의 2년 과정, 그리고 개별요구와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인턴쉽 과정으로 나뉜다.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의 문제해결능력과 협동적 상호작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업으로, 여러 교과영역을 통합하여 학생 중심의 활동으로 진행하는 교양학부의 교육과정이다.
처음에는 1학년만 대상으로 하였으나 학생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고, 단순히 교실 안에서 강의식 학습을 하는 것보다 교육효과도 좋아 2학년도 1학기 동안 전공학과 수업과 더불어 프로젝트 수업을 추가하게 되었다.
여행 등의 버킷리스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1학년의 프로젝트와 달리 2학년은 그 해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목공, 라이딩, 메타버스, 나혼자산다 등 프로젝트의 주제를 다르게 하며 진행을 해왔다.
올해 2학년들은 코로나의 영향인지 기질적인 특성인지 유달리 사회성이 부족하고, 자발성이 낮고, 자기표현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지난 1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떤 교육이 진짜 이 아이들에게 필요할까’를 무수히 고민하며 논의한 끝에 인간관계와 언어, 연극 수업을 통합한 연극 프로젝트 수업을 개설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연극을 통해 배우고 연습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대안학교이다 보니 재정적인 부분 등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실제적인 교육을 큰 제약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다.
발달장애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
작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으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눈 날. 주제는 ‘나의 성장과 변화’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어떤 점들이 달라졌고, 그렇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지 나누었다.
나를 돌아보고 감정을 살피는 일이 쉽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하나둘 자신의 마음들을 꺼내놓았다.
대부분 초중고 학창 시절 동안 일반학교의 통합환경에서 비장애학생들과 지내며 어울리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해 속상하고 외로웠던 과거가 있었다. 누군가는 위축되어 가만히 참는 것으로, 또 누군가는 분노하여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대처하며 어렵게 청소년기를 보냈다.
“친구들이 놀리고 괴롭혔어요. 멱살을 잡고 때린 적도 있어요.”
“함께 하고 싶은데 끼어주지 않았어요. 내 말을 무시하고, 투명인간처럼 취급했어요.”
“매일 싸웠어요. 저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썼어요.“
“혼자 있는 게 좋고 편했어요.”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싶었는데, 다 나를 차단했어요.”
“선생님께 말했지만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또래관계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가진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 이전에도 학창 시절의 기억을 물으면 뉴스에 나올 법한 학교 폭력을 당한 학생들이 흔하디 흔했다. 두드러진 문제가 없던 학생들도 ‘교실에서 나는 그림자였다’, ‘학교에서는 숨만 쉬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리적 통합은 어느 정도 이루었으나 진정한 통합교육은 아직 갈 길이 먼 우리나라의 현주소이다.
“그럼 지금 너희들의 모습은 어때?”
“친구들과 대화하며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요!“
“친구들이 나에게 등 돌리지 않아요.”
“자신감이 생겨서 다른 친구들도 보살펴주고, 여자친구도 생겼어요.”
“주말에 친구들과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즐거웠어요.”
“혼자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좋아졌어요.“
아이들은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폭풍칭찬을 날렸다.
“OO이는 착하고 친절한 친구예요.”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해요.”
“예전에는 화를 잘 냈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눈높이가 맞고 대화가 통하는 친구란 참 귀하다.
비장애 친구들 속에 섞이기 어렵고, 중증의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에게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백여 명 모여 있는 우리 학교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기가 되고 힘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 중 상당수는 바로 그런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즐기지 않는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홀로 이방인이 된다는 느낌이 주는 외로움 때문이다.
나는 때로 비장애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늘 이방인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기쁘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세상에 마음 편히 발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얼마 없다는 반증 같아서.
아이들이 외롭게 부유하지 않도록, 가정이, 학교가,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단단한 중력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려면
처음에 주제를 설명할 때부터 몹시 어려워하며 모르겠다던 한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솔직히 옛날에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많이 했어요. 거짓말도 많이 했고요.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 같았고, 못하는 건 들키기 싫어서 피하고,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장애)에 대해 알면 나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마음을 열기가 어려워요.”
작년 입학했을 때만 해도 자신의 장애를 부인하며, 툭하면 학교를 빠지던 아이였다. 자신은 비장애친구들과 더 잘 어울린다며, 우리 학교의 다른 친구들과 선을 긋던 아이는 1년 만에 솔직한 고백을 꺼내놓았다. 실은 예전부터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걸 알았지만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도움반에 가기를 거부했다고.
경계선급의 지적능력을 가진 우리 아이들 중에는 비슷한 사례들이 꽤 많다. 초등학교 무렵까지는 비장애인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다가 성장하며 점점 격차가 생기고 나중에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분명한 발달의 어려움이 있어 일찌감치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보다 본인이나 가족들의 수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를 수용하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도 맺기 어렵다. 부족함을 들킬까 자신을 감추고 거짓으로 포장하니 진짜 마음을 주고받지 못한다. 스스로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타인에게 사랑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발개진 눈으로 고개를 파묻고 아이는 한참 울었다.
장애에 대한 혐오는, 비단 차별이나 배제 등과 같은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의 시선은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스며들어 그들이 누구보다 사랑해야 할 존재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혐오하며 감추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아이를 얼마나 짓누르고 있었을지. 함부로 재단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눈물을 아이는 한 움큼 토해냈다.
이제라도 그걸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용기 있고 대단한 일이었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어렵다던 아이는 최근 부쩍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시시콜콜한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변화하기 시작한 아이는 작정한 듯 속내를 털어놓았다. 마음을 열기 어렵다는 표현은, 실은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사랑받고 싶다는 절규이다.
“원래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는데,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크나큰 마음의 변화만큼 태도도 놀랍도록 달라진 아이였다. 지각에 결석을 밥 먹듯 하던 녀석이 지금은 기숙사까지 입소해 매일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업이나 활동에도 비딱하게 굴며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태도를 버리고, 순순히 참여해 다른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개과천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뀐 태도의 이유를 묻자 아이가 말했다.
“교수님들이 저에게 잘해주시고 많이 도와주셔서 지금은 교수님들에게 마음을 열었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저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져서 저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노력하게 됐어요.“
교사라면 누구라도 감동할, 가슴이 찡해지는 말이었다.
아이는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를 모두 우리 덕분이라고 했지만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거기에 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늦어 심리적 어려움이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나아간 경우도 있고, 느낀 만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보답받지 못했던 무수한 마음들은 간혹 돌아오는 이런 변화들로 인해 다시금 힘을 얻는다.
눈물과 함께 뚝뚝 쏟아지는 진심에 경청이 어려운 친구들도 꽤 긴 시간을 가만히 기다려주고,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처음에는 기숙사가 맞지 않는다면서 통학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기숙사에 들어와서 적응을 잘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작년엔 무서운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화도 잘 안 했었는데 지금은 저에게 없어선 안 될 친구가 되었어요.“
감정도, 생각도 좀처럼 표현하는 일이 없어 답답하기까지 한 2학년이었는데 스스로에 대해, 친구에 대해 예상보다 진솔한 마음들을 드러내 심장 한편이 뭉클했던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비슷한 경험을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단순히 장애/비장애가 아닌 개개인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크든 작든, 조금씩 달라진 너희들을 보니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과거의 너희보다 현재의 너희가 멋지니 미래의 너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너희가 될 수 있을 거야.“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고, 우리는 모두 타인의 크고 작은 도움과 이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도울 의무 역시 갖고 있다.
타인과 경쟁하고 비교하며 약자는 배척하고 나의 이득만 위하는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불행할 수밖에 없고, 불행한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나 역시 행복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사회가 자신과 타인에게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부족함도 타인의 약점도 보다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고, 1등이 아닌 어제보다 나은 오늘에 박수를 보낼 수 있고, 그래서 누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고, ‘장애‘도 피하고 티 내지 말아야 할 약점이 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