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파크는 도착한 후에도 여러 난관이 있다.
우선 들어선 순간부터 수천 개의 락커 중 나의 락커를 찾아야 한다. 신발장도 찾고, 옷장도 찾아야 한다.
워터파크에서 사용할 돈도 락커키에 충전을 해야 한다. 요즘은 대면 서비스 창구는 줄고 대부분 키오스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 중에도 해야 할 과제가 많다.
식당이나 카페 등의 키오스크는 자주 이용해 참가자들도 비교적 익숙한 편이지만 워터파크 충전은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도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하는 곳, 여행 중에도 배움이 계속되는 곳이 <길 위의 스튜디오>의 여행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며 방법을 설명해 주고, 상대적으로 키오스크 사용이 능숙한 참가자부터 차례대로 충전을 했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도 다른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스스로 해내면 성취감이 생긴다.
작은 일이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경험을 반복하면 자기효능감이 높아지고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된다.
어렵사리 입장한 만큼 참가자들은 신나게 워터파크를 즐겼다.
웰리힐리 워터플래닛은 규모가 아주 크진 않았지만 너무 붐비지 않고 놀기에 적당했다. 슬라이드, 파도풀, 유수풀, 온천 등 워터파크를 정복할 기세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파도풀에서는 또 한 번 당혹스러운 에피소드가 있었다.
웰리힐리 워터플래닛의 파도풀은 시간대 별로 파도의 레벨이 달랐는데, 하필 우리가 들어간 시간이 가장 높은 레벨의 파도가 치는 시간이었다.
여름캠프 경력만 13년, 전국 수많은 워터파크를 섭렵해 온 전문가로서 사실 ‘파도풀이 아무리 세봤자…….’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반성한다.
나름대로 안전한 위치를 찾아 깊숙이 자리 잡고 파도를 기다리는데, 파도가 치기 직전 ‘위험하니 반드시 모자와 안경을 벗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참가자들과 눈이 마주쳤고, 찰나의 고민 끝에 한 참가자는 모자와 안경을 동행한 교사에게 맡겼고 나머지는 각자 본인이 꽉 잡고 있기로 했다.
나 역시 모자와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고,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뿌우우우우- 무시무시한 경고음 이후 파도가 몰려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높이의 파도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윽고.
콰-앙! 엄청난 충격이 우리를 덮쳤다. 뭘 붙잡고 어쩌고 할 틈도 없이 모자와 안경 등이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눈코입으로 밀려드는 물에 혼미해진 정신을 겨우 수습하고 고개를 들었다. 사방에 물미역 같은 머리를 한 사람들이 보였고, 수십 개의 모자가 둥둥 파도를 타고 떠다녔다.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인지 가까운 모자를 주워서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처럼 한 손을 높이 들고 물속에 서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잽싸게 주변을 살펴 낯익은 모자와 안경을 주워 들고 일단 후퇴했다. 길게 논의할 필요도 없이 눈빛만으로도 이 파도는 더 맞을 수 없다는 마음이 통했다.
안전한 곳까지 벗어난 후 상황을 점검했다. 다행히 안경은 모두 무사했다.
모자도 대부분 찾았는데 딱 한 참가자의 모자가 보이지 않았다.
파도풀 안과 주변을 샅샅이 살펴도 잃어버린 모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엉뚱한 남의 모자만 스무 개쯤 주웠다.
유일하게 비슷한 모자는 그룹 내 다른 참가자가 쓰고 있는 모자였는데 그건 본인 모자가 맞다고 확신에 차 답했다.
아무리 찾아도 잃어버린 모자를 발견할 수 없어서 결국 나중에 분실물 센터에 문의를 하기로 하고 모자 찾기를 중단했다.
모자를 잃어버린 참가자는 몹시 침울해졌다. 본래 감정이 섬세하고 기분의 영향을 오래 받는 편이라 모자를 잃어버린 사건이 이후의 여행을 망치지 않도록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 워터파크의 즐거움은 감정을 회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모자의 행방은 며칠 뒤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여행이 끝나고 여행에 대한 후기와 정산, 평가를 하다가 잃어버린 모자 이야기가 나왔는데 뜬금없는 참가자가 자신도 모자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저도 워터파크에서 모자 잃어버렸어요.”
“……모자를 잃어버린 건 ○○이고, 넌 계속 모자 쓰고 있었잖아.”
“아니에요! ○○이 모자는 제가 찾아줬어요!”
“맞아요. 언니가 모자 찾아줬어요.”
두 참가자는 입을 모아 잃어버린 모자를 찾았으며, 없어진 건 다른 모자라고 주장했다.
알고 보니 그 비슷했던 모자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모자였고, 정작 진짜 모자를 잃어버린 참가자는 남의 모자를 쓰고 자기 모자는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진짜 잃어버린 모자는 우리가 파도풀 분실물함에서 오며 가며 수차례 본 모자였다.
의심스러울 때 조금 더 확실히 확인할 것을. 후회가 됐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랴. 이번 사건을 경험 삼아 다음에는 소지품 관리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어쨌든 당시에는 모자 분실사건은 털어버린 채 열심히 놀았다.
폐장 시간까지 꽉 채운 뒤 워터파크를 나왔다. 바로 옆 리조트에 체크인을 하고, 젖은 수영복을 널어놓고 저녁식사를 했다.
뚜벅이 여행자인 우리는 리조트 내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참가자들이 선택한 저녁식사는 족발과 치킨이었다.
<길 위의 스튜디오>의 여행은 기본적으로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시키고 분할결제를 한다. 하지만 이번엔 대표결제 후 1/n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카카오톡 정산하기를 배우고 준비했다.
카카오톡 정산하기는 계산이나 계좌이체를 잘못해도 쉽게 더치페이를 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에 본인 명의 계좌를 연동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그래도 한 번만 하면 이후에 편리함이 훨씬 크다.
대신 아무 송금 요청에나 응하지 않도록 주의사항을 강조하고, 돈을 주고받은 내역을 메모해 가정에서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저녁식사와 더치페이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리조트 부대시설인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도 더치페이를 하기로 하고 미리 방 크기별 비용까지 다 조사하고 간 터라 참가자들은 자신 있게 앞장섰다.
그런데 사장님의 말씀이 우리가 알고 있던 금액과 달랐다.
“1시간에 5만 원, 2시간에 10만 원입니다.”
“……홈페이지에는 1시간에 3만 원이라고 나와 있었는데요?”
그러자 그건 작은 방이라며 방의 크기를 확인해 보라는 사장님. 홈페이지에 큰 방은 15만 원으로 나와 있었는데…… 의아한 마음이 들긴 했으나 작은 방도 크기가 충분했고 사전에 계획한 대로 작은 방을 빌려 흥겹게 놀았다.
다음 날 아침식사는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리조트 내 식당이 많지 않은 대신 편의점에는 엄청 다양한 간편 조리식품이 있었다.
조리 방법을 확인하고,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등을 사용하고, 식사 후 뒷정리와 분리수거를 하는 것까지 모두 각자의 몫이다.
숙소 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친 뒤 체크아웃을 하고 루지와 고카트, 볼링, 오락실 등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예정보다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왠지 이번에도 택시가 두 대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대까지는 바로 호출이 됐지만 세 번째 택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번에도 첫 택시가 둔내역에 도착한 후에야 다시 호출이 됐다. 그래도 시간 여유를 두고 나온 덕에 기차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날 셔틀버스를 놓쳤을 때는 다소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덕분에 가는 날 오지 않는 택시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세상일 꼭 나쁘기만 하리란 법은 없나 보다.
이틀간 하얗게 불태운 참가자들은 기차에 타자마자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파란만장했던 횡성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