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어리광 부려도 돼?

#62. 비 오는 날 추모공원의 고즈넉함에 취해

by 풍선꽃언니
엄마, 나 발아파 죽겠는데
아빠가 자꾸 밥 달라고 한다
만들어서 주면 맛있네, 없네
엄청 뭐라고 한다

주말이다. 비가 오는 오후. 창밖의 풍경은 고즈넉한 건지 스산한 건지 그 중간 어디쯤 되는 것 같고 나는 엄마가 보고 싶고.


달력을 보니 지난주에 다녀왔길래 한주 걸러 다음 주에 갈까 하다가 엄마에게 최근 <결정사항>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채비를 했다. 슬픈 것은, 이제 무슨 결정을 할 때 엄마가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기쁜 것은, 그래도 엄만 저승에서 나마 내 얘기를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엄만 그런 사람이었다.


채비를 했다. 아빠는 내가 자꾸 추모공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헤이리에 바람 쐬러 간다고 대충 둘러댔다. 예의상 같이 갈까? 하고 물었다. 아빠는 헤이리는 젊은 애들 가는 곳이라고 물어볼 때마다 늘 거절이다. 그런데 엄마한테 가는 걸 들켰다. 신발장 한편에 마스크 놓아두는 장소가 있는데 거기 잠깐 추모 꽃 올려놨다가 아빠가 봤다. 눈썰미가 좋은 양반.


"왜 또 가려고 그래" 또 한소리 들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딸이 엄마 보고 싶어 간다는데 아빠로서도 막을 명분이 별로 없었던지 꽃이 이게 낫게 저게 낫네 하다가 우리가 나가기 전에 아빤, 까르 산책을 먼저 나가셨다.


차 타고 가는 동안은 축축한 풍경에 살짝 들뜨는 느낌이 들었다. 발이 아프다 보니 요새 내둥 집에만 있기도 하고 바람을 쐰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그러다 이내 졸음이 쏟아져 조수석 좌석을 뒤로 젖히고 잠시나마 잠이 들어버렸다. 깨어보니 경모공원 정문 통과 중. 눈을 비벼 눈곱을 떼고 들고나는 차들을 눈으로 좇으며 있다 보니 엄마가 있는 추모관에 도착했다.

엄마 나왔어, 나 이번 주엔 좀 결정한 게 많았어.
일단 내가 맨날 울고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나 엄마가 꼭 가라고 했던 대학원 가려고.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입시 대비 강의 수강 신청했어
내가 열심히 해볼게. 잘되게 엄마가 도와줘
그리고 직장 말인데, 나 집중해서 공부가 잘 안돼.
그냥 경찰관 계속 하고 살지도 모르겠어.
뭐가 되었든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가서 잘해볼게
내가 잘 해낼 수 있게 엄마가 지켜봐 줘

결정했던 내용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었다. 바닥에 앉아 엉엉 울면서도 할 말을 다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 그리고 엄마, 나 발가락 수술했어. 무지 아파....
아픈데 아빠가 자꾸 나한테 밥 달라고 해.
나 힘들어 죽겠는데 막 해주면 맛이 있네 없네하고
고기 안 줬다고 뭐라고 하고 미치겠어....ㅠㅠㅠ

하소연도 했더니 한결 더 후련했다.


남편 차례가 되었다. 남편은 가만히 엄마 함에 손을 올려놓더니 엄마를 쓰다듬었다.

어머님.. 지금 집 이사온지 한 삼주 되었어요.
계속 느끼는 거지만 집에 올 때마다 어머니가
"니들 왔니? 밥은?" 하고 물으실 거 같은데
참 이게 믿기지가 않네요.
참 저희 부모님 인천으로 이사 가요. 잘되었지요? 어머님이 부모님 살아생전 잘하라고 하셨잖아요.
저희 집 이제 이사하니까 저도 마음이 한결 나아요.
그리고 Y(나)는 대학원도, 직장도 지원하고
제가 잘 지켜줄 거니까 염려 마세요.
어머님이 저 든든하다 믿는다 하셨잖아요

남편도 바닥에 털썩 앉았다.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끌어안고 우는 나를 달래었다. 비 오는 날 우리 둘 뿐인 추모관. 엉엉 우는 나를 달래듯 까치가 까아악 하고 날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은 갑자기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내가 물었다.


"너 아까 어머님한테 발 아픈데 아버님이 밥 달라고 한다고 울분을 토하더라. 억울했나 봐 하하하"


민망해서 나도 같이 하하하 웃어버렸다.


딸은 엄마가 죽었는데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너네 아빠가 얼마나 웃기는지 아니.." 하며 시작되는 구성진 맞장구가 그립다. 따뜻했던 웃음이 그립다.


그런데 발인하던 날 엄마의 뺨에서 느껴졌던 차가움이 떠올라서 엄마는 내 안에 살아있다가도 다시 죽는다.


다음 주에 또 올게 엄마.

나는 슬퍼도 엄마 자주 보는 게 좋더라.

아빠랑 동생은 같이 안 올 거야.

그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엄마랑 잘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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