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울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71. 어젯밤, 그리고 막걸리 한통

by 풍선꽃언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막걸리 한통에 취기가 올랐다. 나는 울었다. 내가 만든 못생긴 김치전에 막걸리.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그날의 기억들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가 타살이라는 얘기가 있어..

뭐야, 엄마가 죽은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아빠가 죽였다는 말을 한다고? 슬픔에 젖어있는 딸에게, 그 딸의 엄마 장례식장에서?


어제 식탁에 마주 앉은 아빠에게 아빤 왜 가만히 있냐고, 분하지도 않냐고 울부짖었다. 속시원히 경고 한 번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아빤, 휴대폰의 연락처를 뒤져 막내 이모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몸은 좀 괜찮은가." 식상한 인사말이 오갔다.


"언니의 죽음에 내가 연루되었다는 얘기를 Y(작은 이모)가 했다던데 이 얘기의 출처가 어디인 거지?"


막내 이모는 당황한듯한 목소리로,

"형부, 그게 밥 먹다가 얘기 나온 거였어요. J(사촌동생) 친구가 그때 언니 이송하러 온 소방대원인데 그런 말을 했다네요"


"Y(작은 이모) 연락처 좀 문자로 보내주지?"


"Y(작은이모)인가? 잘 지내고 있는가. 지금 통화하기 바쁜가?"


"아니에요 형부"


"언니의 죽음에 내가 연루되었다는 얘길 Y(나)에게 한 저의가 뭐지?"


"..... 혹시 나중에 듣고 충격받을까 봐요..."


"그러니까 나중에 내가 연루되었다는 걸 알고 충격받을까 봐 미리 알려준 거라는 거지? 내가 죽이기라도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 그런 게 아니라 형부..."


"일산 경찰서에 전화해서 뭐가 그렇게 알고 싶었는가? 내가 정말 언니 죽였는지 확인하려고?"


"...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분노했고 이모는 당황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면 오갈 수 없는 대화들을 듣고 있는데 술에 취해서 그랬던 건지 가슴속 깊이 끓던 분노가 용암처럼 솟구쳤다가 거짓말 같은 상황이라며 실소가 나왔다가 곡예하듯 기분이 기우뚱했다.


"나는 잘못 없어요.. J(사촌동생)가 소방대원인 자기 친구한테 들은 얘기라고 하는 걸 Y(나)가 다른 경로로 듣고 충격받을까 봐 얘기해줬을 뿐이에요. 정말이에요"


"사실 확인도 안 된 얘기를 애한테 함부로 해서 상처를 주는 건 안 되는 거지. 얘가 충격을 받아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언니처럼 될까 봐 걱정이 되는 상황이야. 책임질 수 있어?"


나는 사촌동생 J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J(사촌동생)야. 언니야. 네 친구 소방대원 이름 좀 알려줄래? 무슨 근거로 엄마가 타살이라는 얘기가 나온 건지 좀 물어보고 싶어서"


사촌동생은 단연코 자신은 타살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결과적으로 언니가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허울 좋은 말을 덧붙였으나 소방대원의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 소문의 발단의 근거가 자신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건지.

집 밖으로 나왔다. 비는 점점 거세어졌다. 필로티 한편의 자전거 거치대에 걸터앉았다. 엄마가 한 번씩 피우던 담배를 나도 사봤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K(남편),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담배 한 개비 피워볼까 해. 그러면 네가 나에게 실망할까?"


"아니야. 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힘들면 그렇게 해. 대신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된단다"


이 독한 게 뭐가 좋다고 엄마는 피워대었을까. 취기에 담배연기가 더해지니 어지러웠다. 앞이 부예졌다. 몸에 담배냄새가 저는 듯했다. 얼른 한 개비 불을 끄고 잠시 오늘의 대화들을 곱씹었다. 곱씹고 또 곱씹고. 비는 계속 내리고 나는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빗소리에 내 울음소리도 같이 묻혀 시원하게 목청 높여 울었다. 필로티 한쪽 구석 편의 기둥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또 한 개 꺼내 들었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엄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넌 괜찮니?"


"누나. 잊자. 잊어야 살 수 있어.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알지. 누나는 동생을 무지 사랑해."


"징그럽게 왜 이래. 다 아니까 그만해. 얼른 집에 들어가"

잠시나마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 자전거 거치대와 필로티 기둥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게 엄마 죽음이 아빠와 연루되었다고 말한 이모는 내 동생에게 가선 그랬단다.


"집에 여자가 잘 못 들어와서..."


올케랑 남동생은 잘살고 있는데 본인 할 탓이나 잘하고 살면 될 것을 남동생한테 니 마누라가 들어와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말하는 인성을 누가 말리겠는가.


입을 잘못 놀려 가족 불화를 일으킨 사촌동생은 어떻게든 자기 면피를 하기 위해 나의 행복을 바란다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한다.


어제 그렇게 울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땐 이모와 사촌동생은 그 사람 그대로였고 엄마가 죽었다는 현실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


아무리 울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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