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지금 이 시각이, 묘하도록 생경하게 느껴진다. 며칠 내내 흐린 날만 계속되더니 갑자기 뜨끈해진 오후 열기에 선풍기를 꺼냈다. 나는 더위를 잘 타는 편이 아닌데 아빠는 어젯밤을 통으로 설쳤다고 하니 엄마가 죽고 잃어버린 나의 봄이 실감이 난다. 초여름을 건너뛴 여름이 바싹 다가왔다.
평소처럼 아빠와 둘이 한집에서 이것저것 아직 정리 안된 집의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니며 치우기도 하고 물건들을 씻고 재배치하기도 했다. 그러다 힘들어서 아이스 코코아 한잔을 마시고 안마의자에 앉아 <휴식모드> 안마를 삼십 분 설정해놓고 의자를 제쳐 누웠다. 무릎에는 까르가 앉아있다. 로봇청소기는 들들 거리며 거실을 가로세로 돌아다니고 있다. 밥솥에서는 이제 갓 된 잡곡밥의 고소한 향기가 올라와 코끝이 호강을 한다. 이런 때 갑자기 엄마가 울컥 올라왔다.
엄마나 나나 집순이였다. 같이 어디 나가거나 한 경험이 많지 않다. 집에 있으면 덥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마트에 쇼핑 한번 가려면 둘 중 한 사람은 꾸물럭 거려서 짜증을 냈다.외출하고 싶은 욕구가 맞을 때가 별로 없다 보니 집에서 같이 뭉기적 거리며 보내는 날이 많았다. 엄마는 때때로 다른 집 딸들은 엄마하고 쇼핑도 가고 한다는데 너는 뭐냐,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어쩌다가 한번 같이 가면 엄마껀 하나도 안사고 맨날 날 더러만 이것저것 입어보라고 하는 통에 도통 (돈 쓰는)재미가 없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지금 이 시간쯤 불쑥 문을 연 엄마는 내가 누워있는 꼬락서니가 한심하다는 듯 응시하며 "얘, 너 뭐 좀 먹을래?" 할 것 이었다. 왠지 그럴 것만 같은 오후의 향기가 난다. 나는 산발의 머리를 고쳐 묶으며 일어나 "응, 엄마 나 배고파. 뭐 있는데?" 하고 대답할 것이고, 엄마는 메밀국수나 참외, 수박 같은 것을 내주며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을 것이다.
"네가 어른인 척 해도, 엄마한텐 그냥 애야 인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를 엄마.
하늘이 원망스럽다. 신이 있다면 왜 착한 엄마가 그 처럼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 누구나 사람은 한 번은 죽는다는 진리는 그렇다 쳐도 따뜻한 침대에서 온기 가득한 작별이 아니라 차가운 화단을 침대처럼 베고 피 흘리는 마지막이었어야 했는지. 나중에 내 자식한텐 할머니가 조현병에 걸려서 헛것을 보았는지 할아버지랑 한집에 있다가 카레를 만들던 중 27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설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왜 엄마에게 허락된 죽음은 이토록 잔인하고 험한 것일까.
나른한 평일 오후가 주말 같이 느리게 흐르는 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노래가 아무리 나를 기운차게 해 주려 울려 퍼져도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나의 원망은 다른 어떤 계기가 없는 한 영원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