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가 없으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라

#80. 반신욕을 하다 돌아가신 아빠 친구의 아내분

by 풍선꽃언니
그 집은 더 황당하더구먼
와이프가 반신욕을 하다 말고
익사해서 죽었대


어젯밤 아빠는 친구분과 약주를 한잔 들고 집에 들어왔다. 귀가시간 밤 아홉 시 오십 분쯤. 나와 남편은 수업을 Zoom 화상 수업을 마칠 즈음이었다. 엄마가 죽고 아빠는 평소보다 더 많은 약속을 잡고 은퇴노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다행인 일이다.


어제 만난 친구분은 아빠의 선배다. 사별 선배. 같은 처지인데 아빠에게 안쓰럽다고 낙지볶음에 막걸리를 거하게 쏘셨다고 한다. 아빠는 기분이 많이 나아져 귀가했다. 아무래도 공감대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할 말도 많고 위로 아닌 위로도 받으면서 서너 시간 막걸리를 진통제 삼아 한 대 맞고 돌아온 것이다.


그 집은 사연인 즉 그랬다.

"나는 와이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까"

집엘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와이프가 인기척이 없는 거야 와이프가 워낙 반신욕을 좋아했거든
집에서 반신욕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쓰러졌나 봐
반신욕 물에 얼굴이 잠겨 죽었어
사인이 익사다 보니 검찰에서 부검 지시를 하더라고
반신욕 하다 타의에 의해 그리된 거 아니냐고
온 집안이 아주 난리가 났었지
지금은 뭐 한 일 년 지나니까 그럭저럭 지내고 있네

엄마가 죽기 전이라면 나는 <반신욕을 하다 익사했다>는 그 말을 믿기도 어려울뿐더러 남일이니 웃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죽은 뒤의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뒤끝이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엄마의 죽음처럼 황당한 일이 세상엔 존재하고 또 산 사람은 그런대로 살아간다는 현실이 내게 투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산대" 내가 물었다.

사실혼 관계로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있대.
혼자 살다가 갑자기 또 같이 살려니 불편한 거 40프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게 한 60프로쯤 된다더라.

나는 아빠에게 엄마가 죽고 얼마 안돼서부터 아빠가 원한다면 새로운 사람 만나도 좋다고 해왔다. 그런데 혼자된 아빠가 마음 쓰이는 한편 빠 친구분의 여자 친구 얘기에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빠나 남편은 그 얘기를 그리 길게 이어나가지 않았다. 아빠가 아직 젊고 이만하면 멋진 노인(?)이라 일평생 혼자 살기보다 아빠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딸로서 아빨 응원하는 게 맞다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나의 이중성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남편은 내게 이제 반신욕도 혼자 있을 때 하지 말라고 난리를 친다. 야간 교대근무 서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비번날 반신욕을 하는 게 내 낙이었는데. 남편은 아빠에게 "얘가 반신욕을 하다 잠들어서 물에 네 시간이나 앉아있었다"며 과거 내 행적에 대해 열을 올리며 일러바쳤다. 아빠는 반신욕 하는 거 아니라며 어물쩡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내게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어젯밤의 대화는 여기까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인명은 재천이라 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거라고.


어제 이 근처 새로 생긴 아파트에서는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아내를 찌르고 자신은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소방차가 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는데 그 둘은 결국 한날 죽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이 죽는 날은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의 날에 어떻게 죽게 될지는 사람 소관이 아니라 그날의 환경과 조건에 맞게 선택되는 것일 뿐인 것 같다는 생각. 다시 말해 하늘은 사고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든 노령으로 앗아가든 그들만의 책에 쓰인 인생의 길이에 따라 그저 데려가는 게 목적이라는 의미이다. 칼에 맞아 죽든, 엄마처럼 사고로 죽든, 질병이나 심지어는 노령으로 죽어도 그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 충격받는 것은 사람 소관.


결론은, 엄마의 죽음은 하늘이 선택한 방법일 뿐 내가 기억할 것은 그저 신이 정한 엄마의 생이 짧아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라는 것.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죽하면 속담도 있지 않은가.

<재수가 없으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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