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스튜디오에 가면 건식 사우나가 있다. 운동을 마치면 괜히 들어가 앉아있곤 한다. 앉아서 브런치 글도 둘러보고 웹서핑도 한다. 오늘은 그간 내가 썼던 글들의 제목들을 한번 쓱 훑어봤다. 아빠와 남편 가끔 등장하는 남동생까지 가족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나를 새삼 발견했다.
하루 종일 가족들 뒤꽁무니만 쫒아다니면서 뭐하나라도 좋은 게 있으면 어떻게 챙겨줄까만 고민하고 산다. 가족들을 돌보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만 오늘은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그런지 내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에게 가정주부가 되지 말라고 했다.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 한다. 네가 직업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내가 다른 건 다 해주마. 무한 희생정신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엄마 자체가 사회생활에 미련이 많았다 보니 딸인 내가 엄마처럼 주부가 되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다. 첫 직장이었던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경찰공무원이 되기까지 직업적 공백이 있었을 때 준비과정이 지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엄마의 한마디였다.
"엄마는 네 생각하면서 자주 울어. 너 생각하면 안쓰러워서. 우리 딸 똑똑한데 지금 이렇게 있는 게 너무 속상해."
엄마가 나 때문에 운다는 것이 괴로웠다.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결과로 나는 <멈춤>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며 살았다. 엄마가 있음으로써 나는 달리는 말처럼 살 수 있었고 원하는 것은 웬만해선 다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요즘의 나는 엄마가 없어서 만사가 재미가 없다. 엄마가 칭찬해주는 그 맛이 사라져 버린 지금 나는 공허하다. 자랑할 거리를 만들 필요도 없을뿐더러 매사에 비관의 늪에 빠져 혹시 뭔가 여기서 더 잘못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닌데 내년 말이나 돼야 본 게임이 시작된다. 긴 시간이 지루하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불안해서 공부를 하긴한다. 그러나 나보다 가족들이 먼저 보여 종일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누구도 내게 그것들을 하라고 의무를 지워주지 않았는데 연로한 아빠가 하게 하기 싫고 퇴근한 남편이 하게 하기 싫고 하면서 그냥 내가 다한다.
며칠 뒤 16일은 내 생일이다. 늘 직장생활로 바쁘게 살다가 엄마가 차려주는 미역국에 가족끼리 파티하면 행복했는데 생일 기분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뭔가 갖고 싶은 게 없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됐다고 했다.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가족끼리 케이크에 촛불 부는 정도가 전부인데 그마저도 아빠가 좋아하는 뚜레쥬르 케이크를 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는 더 이상 내 생일 같은 날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는 아마도 아빠랑 남편 돌보는 일을 하는 게 운명인 줄 알고 태어난 사람 같아."
남편은 답이 없다.
지금의 내 모습은 분명히 엄마가 내게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찾고 싶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나로 돌아가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내 모습이 그립다. 말은 그립다고 하면서도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지금의 내가 슬픔을 겪고 있는 것인지 상습적 태만에 빠져있는 건지 구별하기도 어렵다.
엄마는 나를 이기적으로 키웠지만 <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고 살던 나>를 사랑했다.
우리 딸은 지밖에 몰라. 자기만 중요하고 다른 건 몰라. 그런데 똑똑하고 야무져서 지할일은 잘해.